[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바리공주의 신병 체험

[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바리공주의 신병 체험

  • 기자명 데일리스포츠한국
  • 입력 2019.06.14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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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양마마님께 투서 찍고 여섯 형님 하직하고

궁합문을 썩 나서니 동서를 분간키 어렵더라

우여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데로 까막까치 인도하는 대로

약수삼천리를 가셨더라”

위는 1996년 서울새남굿 보존회가 발간한 <서울새남굿 신가집>의 말미에 나오는 바리공주 신가의 일부이다.

바리공주 신가는 바리공주가 죽어가는 부모님을 살리는 영약을 구하기 위해 저승길에 오르는 이야기로 시작되어 결국에는 만신의 몸주인 무조가 되는 일련의 과정을 노래한 서사 신가이다. 우리는 그녀가 저승에서 겪는 일련의 고행을 무당으로 입무하기 위한 과정에서 겪는 신병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바리공주의 신병은 여느 무당 후보자가 겪는 정신. 신체장애의 범주에 속하는 신병의 경험만이 아니다. 그녀의 신병은 공주라는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나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고 부모를 살리기 위해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요된 노동과 죽음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녀는 십대왕이 죄인을 끌어다 문초하는 지옥을 난생 처음으로 접한다. 십대왕의 안내로 그녀는 칼산지옥, 불산지옥, 눈지옥, 배암지옥, 억만사천지옥과 귀졸들이 고문하는 장면도 잇따라 경험한다. 이 지옥들은 지옥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녀가 경험하는 일련의 신병과 고통의 방식을 수용하고 육화하는 과정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다.

바리공주는 약수를 구하기 위해 무장승에게 밑 빠진 독에 물 삼년 길어다 붓고, 불씨 없는 아궁이에 불 삼년 지펴 놓으며 ‘일곱 아들을 낳아’주었다. 그녀는 저승에서의 고통스러운 삶을 통해 석가세존의 일부 권능을 위임받게 된다. 엘리야데가 그의 책 <샤머니즘>에서 “영력의 획득”이라고 표현한 샤만의 권능이다.

그녀는 석가세존이 건네 준 낙화(나화(우담바라화): 삼천 년 만에 부처가 출현할 때 핀다는 상상속의 꽃)로 지옥을 부수고, 지옥에 갇혀 고통 받고 있던 죄인을 풀어주고, 십대왕과 함께 그들을 극락세계로 인도한다.

신병이 샤머니즘적인 영성을 가진 인간이 경험하는 ‘샤먼으로서의 소명의 위기”가 표출되는 현상이라면, 바리공주의 저승에서의 경험은 장차 샤만이 될 사람으로서 겪는 일련의 “정신적 평형이 일시적으로 무너지는 상태’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의 “성(聖)과 속(俗)의 극단적인 분화와 이에 따르는 현실로부터의 괴리”를 극복한다. 바리공주는 속된 인간으로서의 자아(소자아)를 죽이고 우주적 자아(대자아)로 새롭게 태어났다.

바리공주신화는 재생 신화의 전형으로, 바리공주가 타인을 치유할 힘을 가진 만신의 몸주로 현현한 후 자기실현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노래한 대서사시이다. (계속)

※ 여기 연재되는 글은 필자 개인의 체험과 학술적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한 개인적 견해이며 특정 종교와 종교인 등과 논쟁이나 본지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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