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동화] 닥나무숲의 비밀-12. 새로운 출발 <1>

[장편동화] 닥나무숲의 비밀-12. 새로운 출발 <1>

  • 기자명 박월선 기자
  • 입력 2019.06.1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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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돈, 노래 부르지 말고, 정말 ‘나는 한지를 사랑한다!’ 하고 열심히 물질을 혀는 겨! 그래야 한지도 착착 앵기지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월선 기자] “자, 이제부터가 시작이여.”

할아버지가 지소 창고 문을 열었다.

“이것을 꺼내서 깨끗하게 씻어야 혀.”

할아버지가 한지 뜨는 발틀을 아빠에게 건네 주었다.

“발틀이네요?”

아빠가 발틀을 이리저리 돌려 보며 말했다.

“그려. 이제부터 한지 뜨기를 정식으로 배워야지.”

아빠는 발틀의 의미를 알기에 눈가가 벌게졌다. 전용 발틀을 갖는다는 것은 지장으로 입문하는 첫 발걸음을 허락받는 것이었다.

“형님, 축하혀요.”

갈담이 삼촌이 발틀을 씻으며 말했다. 한지를 뜨기 위해서는 전날에 작업하고 나서 발틀에 끼어 있는 닥풀을 긁어내는 것부터 해야 했다. 섬세한 한지는 발틀이 깨끗해야 실수 없이 만들 어진다. 발틀에 닥풀 찌꺼기가 남아 있으면 불량한 한지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갈담이 삼촌은 한지 뜨기를 할 땐 정말 신중했다. 발틀을 손질하는 갈담이 삼촌의 손길이 더 오래 머물렀다.

발틀을 손질하는 갈담이 삼촌을 바라보고 서 있는 아빠 곁으로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한지 뜨기는 하루하루 한지에게 마음을 주어야 한다. 닥지가 닥풀과 만나서 발틀에 착 붙어야 한지가 만들어지는 겨. 그동안 만든 가짜 한지 말고, 이제부터는 진짜 한지를 만들어야 하는 겨! 알았제?”

“예.”

“돈, 돈, 노래 부르지 말고. 정말 ‘나는 한지를 사랑한다!’ 하고 열심히 물질을 혀는 겨! 그래야 한지도 착착 앵기지.”

할아버지는 아빠를 깊은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아빠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아빠가 지우를 바라보았다. 각오를 새롭게 한 표정이었다.

“그려 한 번 해보는 겨.”

“예.”

“이제부터는 갈담이를 닮아야 혀. 갈담이는 한지 만들기를 배우려고 늦은 밤까지 염료 작업을 하고 청소를 말끔하게 혀지. 또 내가 일어나는 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 일어나서, 그날 한지 뜨기를 하기 전에 닥풀(황촉규) 작업을 미리 허고 나를 기다리는구만. 네가 할 수 있을랑가? 너는 해가 봉창을 뚫도록 자니께 걱정이여.”

할아버지가 아빠를 보며 말했다.

“저도 이젠 옛날의 제가 아니에요. 두고 보세요.”

아빠가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힘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저기 차가운 물 속에 손을 집어 넣고 백피를 두 시간 동안 일광표백을 혀 봐! 늘 갈담이가 허던 일인디, 오늘부터 네가 혀 봐!”

“예? 예.”

할아버지가 물탱크에 백피를 넣고는 지소에서 나갔다.

아빠는 물 속에 손을 넣고 백피를 바쁘게 움직였다. 할아버지 뒷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제서야 시린 손을 호호 불었다.

“지우야, 아빠 손이 동태가 되겠다.”

아빠가 엄살을 떨었다.

“갈담이 삼촌은 벌써 동태가 되어서 찌개를 끓이겠네.”

지우가 아빠에게 농담을 던졌다.

“아니, 이 녀석이 아빠를 만날 놀리기만 해!”

지우와 아빠는 오랜만에 소리내서 웃었다. 지우도 힘이 났다. 열심히 일하는 아빠의 모습이 너무 멋졌다.

그때 갈담이 삼촌이 큰 소리로 외쳤다.

“모두 모여 보시오!”

아빠는 지우와 함께 마당으로 나갔다. 할아버지도 급히 방에서 나왔다.

박월선(‘닥나무 숲의 비밀’ 저자)
박월선(‘닥나무 숲의 비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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