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동화] 닥나무숲의 비밀-11. 지장을 뽑아라 <2>

[장편동화] 닥나무숲의 비밀-11. 지장을 뽑아라 <2>

  • 기자명 박월선 기자
  • 입력 2019.06.12 09:35
  • 수정 2019.06.12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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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한지 작업장으로 걸어갔다. 할아버지는 불 켜진 지소를 보고도 모른 척 잠자리에 들었다.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월선 기자] “형님이 컴퓨터 앞에서 날을 세더니 이런 일도 있구마요. 형님은 컴퓨터 박사랑게요.”

“내가 뭘, 이거 쉬워.”

아빠는 갈담이 삼촌의 칭찬에 우쭐해서 말했다.

“그려. 장허다. 너는 그렇게 그 뭐시냐, 컴퓨턴가 뭔가를 하고 갈담이는 한지를 만들면 되는 겨. 이번 기회에 10대 지장 임명식을 할 예정이여. 지장은 정당한 과정을 통해 뽑을 것이여”

할아버지가 아빠와 갈담이 삼촌을 보며 말했다.

“10대 지장이라……”

아빠는 혼자 중얼거리다 웃었다. 전에는 관심도 없던 단어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아빠는 한동안 멍하니 선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빠는 한지 만드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지장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울렁거렸다. 이게 다 지난 번에 약속을 한 이후 생긴 일이었다.

할아버지가 마을회관에 모인 한지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번 기회에 우리 마을 10대 지장을 새로 임명할 예정이여. 그리 알고 다들 도와주어야 혀”

“한지 전수자를 뽑는다고? 우리 마을에 경사가 나것구만”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당연히 갈담이가 혀야제?”

평소 말이 없던 곽 씨 아저씨가 굽은 허리를 펴며 말했다.

곽 씨 아저씨는 늘 갈담이 삼촌과 궂은일을 도맡아 했었다. 곽 씨 아저씨 말을 듣던 마을 사람들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 왜 그런디야. 쑥스럽구만”

갈담이 삼촌이 더듬더듬 말했다.

갈담이 삼촌은 발틀을 잡으면 누구보다도 정확한 손동작으로 물질을 했다.

그런 모습을 여러 번 지켜본 아빠도 속으로 감탄할 정도였다.

“그려. 갈담이가 한지를 제대로 배웠잖어”

마을 사람들이 서로 서로 한마디씩 주고받았다. 마침내는 갈담이 삼촌이 지장으로 임명될 것이라는 소문이 마을 안에 쫙 퍼졌다.

아빠는 갈담이 삼촌이 누더기 차림으로 아버지 손에 이끌려 대문 안으로 들어서던 지난 일을 떠올렸다.

“짜식! 많이 컸네.”

“형님, 저는 형님을 도울 것이구만요. 혼자 한지를 뜨는 것보다 형님이 함께하는 것이 더 든든하구만요.”

아빠를 바라보는 갈담이 삼촌 눈이 촉촉이 젖어 있었다.

“그래, 고마워. 나도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연습을 할 거야.”

아빠는 한지 작업장으로 걸어갔다. 모두 잠든 밤이었지만 한지 작업장의 불빛은 밤새 꺼지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불 켜진 지소를 보고도 모른 척 잠자리에 들었다.

지우는 아빠가 일하는 모습이 좋아서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방에 들어가서 자.”

밤이 더욱 깊어가자 잠에 겨워 졸고 있는 지우를 보며 아빠가 말했다.

“아니, 안 졸려.”

끄떡끄떡 졸면서도 지우는 아빠 옆에 있었다. 지우는 아빠 곁에 있는 것이 좋았다.

“어서, 들어가거라.”

아빠가 등을 떠미는 바람에 지우는 마지못해 지소에서 나왔다.

지우는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마루에 서서 잠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왠지 댕기소녀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내일은 댕기소녀를 만나러 가야지’

지우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박월선(‘닥나무 숲의 비밀’ 저자)
박월선(‘닥나무 숲의 비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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