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동화] 닥나무숲의 비밀-9. 갈담이 삼촌 <1>

[장편동화] 닥나무숲의 비밀-9. 갈담이 삼촌 <1>

  • 기자명 박월선 기자
  • 입력 2019.05.3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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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애비가 갈담이 반만이라도 닮으면 오즉이나 좋겄나?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월선 기자] 언제나 아침 일찍 기침 소리를 내던 할아버지가 웬일인지 일어나지 않았다.

‘아빠 때문에 충격을 받아서 그런 걸까?’

지우는 할아버지 방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할아버지, 식사하세요.”

지우가 깨우자 부스스한 얼굴로 할아버지가 일어났다.

얼굴이 푸석푸석한 게 좀 부어 보였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난 거여?”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할아버지, 어디 아파요?”

지우는 할아버지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

“아니다, 아녀. 늙으면 여기저기가 쑤시는 겨.”

할아버지는 애써 태연하게 말했지만 방바닥에서 일어날 때 다리가 휘청거렸다.

지우는 얼른 다가가 할아버지를 부축했다. 할아버지는 지우의 등을 토닥여 주고는 천천히 마루로 나왔다.

그때 곽 씨 아저씨가 대문을 들어서며 말했다.

“홍 지장님, 닥나무 묘목이 마을 회관 앞에 도착했구만이라.”

“그려. 수고했네.”

아빠가 할말이 있는 듯 마루에서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아빠를 외면했다.

“아버지, 폐수 문제는 제가 잘못했습니다.”

안절부절못하던 아빠가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려. 인간이라면 잘못을 알아야제. 근디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사람은 밥 먹을 자격도 없는 겨. 이제 너를 야단칠 기력도 없다.”

잠시 동안 아빠를 바라보고 섰던 할아버지가 힘없이 말했다.

“아버지, 마을 회관 앞에 닥나무 묘목이 도착혔다는디, 나가 보셔야지요.”

갈담이 삼촌이 말했다.

“그래. 얼릉(얼른) 아침밥을 먹고 마을 회관으로 가보자!”

할아버지는 갈담이 삼촌을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식사를 마치고, 할아버지가 허리에 양손을 받치고 걸었다. 아빠가 얼른 다가와서 할아버지를 부축했다. 어느 때보다 느린 걸음으로 도착한 할아버지는 아빠에게 말했다.

“내가 요즘 기운이 없으니, 갈담이와 함께 의논해서 닥나무를 키워야 혀. 어렸을 때 닥나무 심어 봤지야. 닥나무 심기부터 시작혀 봐. 마지막 부탁이니, 제발 사고 치지 말고, 지우 생각해서 정신 좀 차려!”

“닥나무 심는 것은 자신 있죠.”

아빠는 어제의 잘못을 덮으려는 듯 큰 목소리로 말했다.

“우선, 동네 어른들에게 닥나무를 심을 양만큼 배분하고 나머지는 너와 갈담이가 돌밭에 심어야 혀.”

“예, 싸게싸게(빨리빨리) 갈라요.”

갈담이 삼촌이 할아버지와 아빠의 말을 들으며 뒤를 따라 걸었다. 지우도 뒤따랐다.

닥나무는 돌밭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산기슭에 있는 빈 땅을 닥나무밭으로 쓰려는 것이었다.

돌밭을 개간해서 닥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도 갈담이 삼촌이 먼저 시작한 일이었다.

‘요즘, 세상에 갈담이처럼 성실한 사람은 없을 겨.’

할아버지는 갈담이 삼촌을 볼 때마다 든든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늘 허전했다.

“지우애비가 갈담이 반만이라도 닮으면 오즉이나 좋겄나?”

할아버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곤 했다.

할아버지는 누구라도 일을 잘못할 때면 혹독하게 야단을 쳤다.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다른 일꾼 아저씨들이 괴팍한 노인네라고 투덜거리며 떠나도, 갈담이 삼촌은 묵묵히 일을 했다. 할아버지와 갈담이 삼촌은 늘 가까이 있었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라 서성거리는 아빠와 달리, 갈담이 삼촌은 일을 척척 진행하고 있었다.

박월선(‘닥나무 숲의 비밀’ 저자)
박월선(‘닥나무 숲의 비밀’ 저자)
데일리스포츠한국(2019.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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