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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등대] 동백 숲길 끝자락서 남해안 최초 밤바다를 밝히다[박상건 시인의 섬과 등대여행] 38 거문도등대...뱃노래, 낚시, 트레킹 코스
  • 박상건 기자 pass386@daum.net
  • 승인 2019.05.2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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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건 기자] 거문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에 있는 섬이다. 여수와 제주도 중간에 위치한 다도해 최남단 섬이다. 여수항에서 117㎞ 해상에 있는 거문도는 가막만을 지나 좁은 해협의 백야도 등대를 지나 다시 초도를 거쳐 뱃길로 2시간 달려 당도한다.

거문도항

거문도는 서도, 동도, 고도 3개 섬으로 이뤄져 있다. 전체 섬 면적은 27.48㎢이고 유인도 8개, 무인도 104개 등 모두 112개의 섬이 있다. 해안선 길이는 99km, 섬에는 2029년 5월 현재 1,261세대 2,643명의 주민이 산다. 주민들은 주로 밭에서는 고구마, 감자, 마늘, 유채, 양파농사를 짓고 연안에서는 삼치, 멸치, 도미, 갈치 등을 잡는다. 자연산 굴, 미역, 조개류도 채취한다. 특산물은 자연산 미역, 갈치, 갈치창젓이다.

거문도는 백도 등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국가명승지이자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다. 청정해역의 남해어장 중심지로 풍부한 수산자원이 있는 어업전진기지이다. 많은 섬이 분포한 해역은 대부분 암석해안과 해식애로 이뤄져 있다. 그래서 바다낚시터로 각광받는 섬이다. 특히 참돔, 흑돔, 돌돔. 참돔, 흑돔, 돌돔 낚시는 7~8월에 절정이다. 서도 남쪽 등대와 촛대바위, 용냉이, 재림여 등이 포인트이다. 동도는 대형돌돔이 잘 낚인다. 찌낚시를 이용하는 것이 대어를 낚는 비법중 하나라고 낚시꾼들이 귀띔해줬다. 거문도 풍경을 감상하면서 선상낚시를 즐기고 싶다면 거문도와 백도 중간 지점에 있는 삼부도와 대삼부도가 포인트이다. 참돔, 돌돔 등 대어입질이 많다. 이밖에 거문도는 수중탐사 등 해양 관광 레저 산업의 최적지이기도 하다.

100년 된 옛 등대야경

‘거문도 뱃노래’는 거문도 사람들의 애환이 묻어난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이다. 섬사람들이 고기를 잡으러 나가거나 만선으로 돌아올 때 부르는 이 뱃노래는 400여 년 전부터 전해와 지금도 불리는 우리 가락이다. 북과 꽹과리, 장고를 두들기며 고기를 좇아가며 바다에서 살아가는 어부들의 기쁨과 편린이 묻어 있다.

“어기영차 노저어가세/어기영차 노저어가세/남해바다가 어디메냐/서해바다가 어디메냐/이 바다를 건너면은 고기 바탕이 나온다네//어야디야 어야디야/어야디야 어야디야 어야디야 노저어가세/몇일을 가서 남해를 갈거나/몇날을 가서 서해를 갈거나/이보소 도사공 말 들어보소/뱃전이 어디로 돌아를 가나/걱정을 말고 돌아를 가세”

‘거문도 뱃노래’와 함께 400여 년 전부터 거문도 서도마을 주민들에 의해 전승돼 온 노동요가 ‘거문도 술비 소리’이다. 바람이 많은 거문도에서는 밧줄이 생명줄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붕을 이거나 어로 작업에 밧줄이 절대 필요했고, 마을 사람들은 칡덩굴이나 짚을 모아 갯가에서 작업을 했다. 이 때 작업의 능률을 높이기 위하여 이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에는 섬사람들의 협동심과 단결심이 배어 있고 외딴섬에서 사는 고달픔과 외로움, 끈질긴 생활력을 읽을 수 있다.

“살살 비벼라 꼬시락 든다/에이야라 술비야/중간 사람은 잘 봐 주소/에이야라 술비야//여섯 가지를 고루 돌리소/에이야라 술비야/이번 맞고 금 쳐놓세/에이야라 술비야/술비여어/에헤에 술비여어 어루야/에헤어루 술비야/에이야 술비야/에야 디디야라 술비야”(‘거문도 술비 소리’ 중에서)

안개낀 목넘이 길...등대로 가는 길

섬사람들은 삼월삼짇날이 가까워지면 해삼도 꽃을 따먹으러 뭍으로 올라온다고 말하곤 한다. 그 때부터 해삼을 쉽게 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해조류 역시 봄이 절정이다. 미역, 톳, 참가사리, ‘불둑’이라 부르는 붉은가사리, 참몰 등이 이 시기에 많이 나는 해조류이다. 이 중 거문도 미역은 수중에서 나는 자연산 돌미역으로 거문도 특산물이다.

은빛갈치 역시 거문도 먹거리의 상징이다. 거문도 갈치잡이는 전통적으로 배에서 잡는 채낚기를 중심으로 일제강점기에 도입된 안강망, 기선저인망, 선망, 트롤, 일정한 수역에 어장을 설치해 잡는 낭장망과 정치망 방식이 있다. 요즘 갈치를 잡는 배들은 대부분 채낚기이다. 바늘이 여러 개 달린 낚싯줄을 이용해 잡는데 그물로 잡을 때보다 은빛 비늘이 덜 상하고 훨씬 싱싱하다. 갈치로 요리한 음식은 갈치회, 갈치조림, 갈치구이, 갈치국, 건조갈치(편갈치) 등 다양하다. 젓갈로는 갈치속젓과 갈치통젓을 담아 먹는다. 현재는 갈치가 비싸서 갈치통젓은 잘 담그지 않는 편이다.

거문도는 배가 처음 들어설 때 왼쪽 방향 작은 섬이 동도, 오른쪽 섬이 서도이고 여객터미널이 있는 섬이 고도이다. 고도에서 서도를 잇는 타원형 구름다리 삼호교를 건너면 100년 역사를 지닌 거문도 등대가 있다. 등대는 어민들의 뱃길을 밝히는 역할도 했지만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전략적 요충지인 탓에 열강의 침입으로 거점이기도 했다.

동백터널

구한말 러시아와 영국의 주도권 다툼 때문에 1885년 영국이 애꿎은 거문도를 불법 점거한 거문도 사건이 일어났다. 고도 역사공원에는 당시 목숨을 잃은 영국군 묘지가 단장돼 있다. 당시 영국군은 2년 동안 거문도 주민들과 지냈는데 품삯을 주고 일을 시킬 정도로 조정 탐관오리들보다도 나았다고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영국의 거문도 점령에 항의하기 위해 중국 청나라 제독 정여창이 거문도를 방문했는데 이 섬에 학문이 뛰어난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문장가들이 많다는 의미인 ‘거문(巨文)’으로 개칭하도록 우리나라에 권유해 그때부터 ‘거문도’로 이름을 지었다고 전한다. 물론 거문도는 산지가 많아 아름드리나무가 빽빽한 섬이 한낮에도 어둡다는 뜻으로 고유어 ‘검은’을 거문(巨文)으로 차자(借字)했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거문도 서쪽에는 녹산 무인등대가 있고 수월산 절벽 위에 유인등대가 있다. 역사적인 거문도 유인등대로 가는 길은 ‘목넘어’, ‘무넘이’로 불리는 길이다. 갯바위를 타고 등대로 가는 길에 들어서면 1.2km에 이르는 환상의 동백터널이 이어진다. 중간 중간에 벤치가 마련돼 호흡을 가다듬으며 주변 풍광을 감상하고 사진촬영하기에 제격이다. 그렇게 동백터널 끝자락에 114년의 역사의 거문도등대가 있다.

등대 강아지

오래 전 거문도등대를 처음 방문했을 때 맨 먼저 달려와 맞아준 것은 두 마리의 강아지였다. 등대 숙소에서 하룻밤 묵던 그날 밤이 깊도록 강아지는 나그네 문밖에서 앉아 떠날 줄 몰랐다. 얼마나 외로웠던 탓일 게다. 오징어 다리를 던져주자 녀석은 반갑게 받아먹곤 했다. 눈이 참 선했던 녀석이었다.

거문도등대는 1905년 4월 12일 처음 불을 밝혔다. 남해안 최초의 등대이고 등대근무원 숙소, 사무실 등 전체 규모로는 동양 최대 규모이다. 2006년 1월 노후 된 등대를 대신하여 33m 높이의 새로운 등탑이 신축되었다. 역사적인 기존 등탑은 등탑 외벽과 중추식 회전장치 등을 보수하여 해양유물로 보존하고 있다.

현재 거문도등대는 연와조로 만든 하얀 색상으로 15초마다 한 번씩 불빛을 깜박인다. 42km까지 불을 밝힌다. 2017년 불빛을 밝히는 장치인 등명기를 LED로 개량했다. LED가 되면서 선박이 더욱 먼 곳에서도 거문도 등대를 볼 수 있게 됐고 등대의 회전장치 내 수은이 고수명 베어링으로 대체됐다. 특히 등대의 불빛과 회전장치를 이중화하면서 만일의 고장에 대비했다.

등대 팔각정

등대는 해수면으로부터 69m에 이르는 절해의 고도에 서 있다. 절벽 아래는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의 깎아지른 벼랑이다. 해안에서 등대를 향해 타오르는 푸른 모시풀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등대 아래 배치바위는 강태공들의 낚시 포인트. 이따금 고기잡이 어선들이 포구로 돌아오곤 했다. 노을바다에 깃발을 나부끼며 돌아오는 어선의 모습이 정겹고 이국적이다. 등대 옆에는 ‘관백정’이라는 팔각정 쉼터가 있다.

그날 밤이 되어 등대소장과 등대근무원 그리고 동행한 기자와 밤새 등대이야기를 나눴다. 등대소장은 등대까지 집배원이 오지 않는 탓에 직접 여객터미널까지 내려가 우편물을 가져왔다. 밤에도 가로등 없는 산길을 오가야 했다. 동백꽃 절정기에 붉게 떨어진 동백꽃을 밟지 않기 위해 비켜 걷는 마음씨 좋은 분이었다. 자연과 한 호흡으로 사는 등대근무원의 삶에 고개가 숙여졌다.

거문도등대 LED등명기

그는 여수에서 뱃길로 6시간 걸리던 소리도 등대 근무시절에는 지게에 배터리를 짊어지고 등대로 가는 산길에서 배터리 수은이 터져 독성으로 런닝구가 펑크 나고 피부가 다 벗겨지기도 했단다. 피곤에 지쳐 잠에 들었는데 독성 탓에 이불이 불에 탄 듯 구멍이 났더란다. 태풍주의보에 보급선이 오지 않으면 나무베어서 군불 지피고 집배원이 섬에 올 수 없어 늦게 도착한 전보 탓에 가정 대소사 놓치기가 일쑤였다. 초도라는 외딴 섬 근무 시절에는 사람의 시체를 가마니에 싸서 바람에 썩히는 소위 ‘초분’ 탓에 도깨비 혼령에 떨어 머리끝까지 땀범벅이 되어 줄행랑을 쳤다. 어느 깊은 밤에 노파가 주검을 쓰다듬는 모습과 마주치기도 했다.

첨단 등대 LED 등명기

지금이사 근무여건이 많이 좋아져 추억의 옛 이야기가 되었지만, 등대근무원들이 늘 어민들의 삶과 수평을 이루며 지내는 일은 예나지금이나 한결 같다. 집집마다 생업에 어려움이 없도록 안개가 낄 즈음엔 미리 등대를 점검하고 그들의 터전을 비추어주고, 발전기가 고장 나면 온몸으로 등명기를 돌리며 밤을 꼬박 새웠던 등대근무원들의 애환을 상세히 아는 사람들은 드물다.

섬 여행에서 만난 등대근무원과 대화는 그렇게 밤새도록 끝이 없었다. 그들은 우리시대 영원한 휴머니스트들이다. 저 붉은 동백 숲이 이 등대를 뜨겁게 에워싸고 있다. 고기잡이 간 남편을 기다리다 끝까지 정조를 지키고 몸을 던져 피토하며 죽은 전설 속의 동백꽃과 등대근무원, 등대와의 커뮤니케이션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다음날 이른 새벽 쪽지 한 장 남기고 등대를 떠났다. 마음씨 좋은 등대식구들이 아침밥상을 차릴 것만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오늘도 그 섬, 그 등대가 그립다.

문의: 여수시 삼산면(061-659-1261), 여수지방해양수산청(061-650-6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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