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동화] 닥나무숲의 비밀-7. 약속 <2>

[장편동화] 닥나무숲의 비밀-7. 약속 <2>

  • 기자명 박월선 기자
  • 입력 2019.05.27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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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사람이 될겨? 쯧쯧쯧” 할아버지는 아빠를 한 번 더 쏘아보고는 나갔다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월선 기자] “너구나. 네가 뭘 한 겨?”

“제가 화학약품을 쓰기는 했지요. 딱! 한 번. 딱! 한 번인데 뭔 일 있을라고요?”

“딱 한 번? 몸 좀 편하자고 전통 한지의 약속을 깨 부렀어? 우리 조상님들이 백 년을 지켜 온 약속을 말이여?”

할아버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약속이라니요?”

“닥나무 정령님께 드리는 우리 조상님들의 약속이여. 전통 한지를 천 년이 가도록 지키겠다는 약속 말이여.”

“요즘 세상에 정령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약속을 지킬 필요가…… 있나요?”

아빠가 할아버지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 이놈! 이놈! 뭐가 어째?”

“아버지, 그것이 아니고.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더 들을 것도 없다. 화약약품을 쓴 개량 한지를 만들어서 납품을 했는겨? 어디로?”

할아버지는 분에 못이겨 발을 구르며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는지 닥섬유를 만들 때 사용하는 닥 방망이를 집어들고는 아빠에게 마구 휘둘러댔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힘없이 마당에 풀석 주저앉았다.

“아버지, 진정하세요. 다 말씀 드릴게요.”

환경청 사람들은 아빠의 어이없는 행동에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그리고는 할아버지와 아빠가 실랑이 벌이는 것을 지켜보다가 경고장을 남겨 두고 돌아갔다.

갈담이 삼촌은 환경청 직원들의 뒷모습을 멍하게 바라보며 힘없이 서 있었다.

“갈담아, 춘호가 납품한 한지를 하나도 빠짐없이 거둬들여야 혀!”

아빠 이야기를 다 들은 할아버지가 힘없는 목소리로 갈담이 삼촌에게 말했다.

“예. 걱정허지 마셔여.”

갈담이 삼촌이 서둘러 지소 사무실로 들어갔다.

“언제 사람이 될 겨? 쯧쯧쯧.”

할아버지가 아빠를 보며 말했다. 아빠는 여전히 낮술에 얼굴이 벌건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빠를 한 번 더 쏘아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지우는 얼른 할아버지 뒤를 따라 나섰다.

“걱정이여, 걱정.”

할아버지가 중얼거리며 숲 쪽으로 걸어갔다.

‘이제 어두워질 텐데 어딜 가시는 걸까?’

지우는 할아버지가 걱정이 되어 몰래 뒤를 따랐다.

할아버지가 어딘가를 향해 계속 걸었다. 지우도 말없이 작은 소리로 숨을 몰아쉬며 할아버지를 뒤따랐다.

한참을 걷던 할아버지는 아주 오래된 닥나무 고목에 절을 하고는 그 옆에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지우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할아버지가 들어간 곳은 지우가 댕기소녀를 다시 만난 그 빈집이었다.

살금살금 문 쪽으로 다가가는데, 문이 갑자기 벌컥 열리더니 할아버지가 다시 나왔다. 지우는 깜짝 놀라서 걸음을 뚝 멈추고 말았다.

“어여, 들어 와라! 따라오는 거 다 알고 있었어.”

“예.”

지우가 할아버지를 따라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섰다.

할아버지가 빈집으로 들어가서 향을 피웠다. 그 옆에는 닥종이 인형들이 고운 한지로 만든 한복을 입고 서 있었다.

“이곳은 한지마을을 지켜 주는 ‘닥나무 숲의 정령’을 모시는 사당이여.”

닥종이 인형들이 사는 곳으로만 알았던 지우는 사당이라는 말에 다시 집 안을 둘러 보았다.

그제서야 구석구석 할아버지의 손길이 느껴졌다.

박월선(‘닥나무 숲의 비밀’ 저자)
박월선(‘닥나무 숲의 비밀’ 저자)
데일리스포츠한국(2019.5.27)
데일리스포츠한국(2019.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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