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한국 샤머니즘의 저승관

[유명옥의 샤머니즘 이야기] 한국 샤머니즘의 저승관

  • 기자명 데일리스포츠한국
  • 입력 2019.05.27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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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스포츠한국] 한국의 민간 신앙에서는 생과 사가 대립의 개념이 아닌 상호공존의 관계로, 현실 세계인 이승과 사후 세계인 저승은 이분법적인 두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저승은 이승의 상대적인 개념으로 죽음 이후의 저 세상(彼岸)을 가리킨다. 이 세계와는 다른 세계라는 뜻의 타계(他界: Otherworld, Jenseits)라는 단어와도 일맥상통한다. 한국인은 죽음 이후에도 이승의 삶이 저승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는 계세적(繼世的)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또한, 영혼과 몸의 결합은 삶으로, 그것의 분리를 죽음으로 받아들인다. 죽은 이후의 몸은 소멸되지만, 영혼은 사후 세계인 저승에서 영원한 삶을 얻거나 현실세계인 이승에서 새로운 생명체로 다시 환생한다고 믿었다.

죽은 자의 가족과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망자의 영혼이 이승에서의 모든 미련을 끊고 저승으로 무사히 넘어가는 것이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등과 같은 속담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국인은 제 아무리 고달프다고 해도 이승의 삶이 저승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현세적인 삶을 더 중요시하는 가치관과 태도를 보인다.

우리는 아직도 나이가 들어 죽음에 임하면 집에서 온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맞이하는 임종을 가장 이상적인 죽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오복의 하나로 고종명(考終命)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죽은 후 장례 의식을 무사히 치르면 망자는 이승에서의 한 생을 마무리하고, 조상신이 되어 후손의 숭배를 받는데, 이 때 조상은 자손을 보호하고 복을 준다고 믿는다. 지극한 조상의 섬김이 곧 후손의 발복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고대나 불교의 유입 이전의 시기에는 저승에 대한 역사상의 기록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에게는 천당과 지옥과 같은 저승의 개념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샤머니즘의 현세주의적 성격으로 인해 지옥에 대한 묘사조차 없는데, 우리 조상들에게는 대체로 현세에서의 처벌과 보상만이 주된 관심사였던 것 같다.

시간의 흐름과 여러 문화의 혼재에 따라 한국의 샤머니즘에는 다양한 민간 설화가 결합되었고, 불교적 저승관까지 융합되어 샤머니즘의 저승관이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문화원형 라이브러리의 ‘저승의 의미’에는 “죽음은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것이기에 그를 황천이라고도 했고, 저승이라고도 했다. 황천이란 개념은 중국 황하(黃河)의 황토층(黃土層)에서 비롯된 것으로 어두컴컴하고 쓸쓸한 곳을 의미하며, 죽은 사람이 가는 곳이지 특별하게 죄를 지은 자가 벌을 받아서 가는 곳은 아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국의 샤머니즘 및 민간 설화에 나오는 저승은 뚜렷한 공간적 구분이 있는 개념이라기보다는 다소 “막연하고 모호하며 불확실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저승은 “죽은 영혼들이 가는 세계로서 이승이 아닌 어떤 곳”이며, 가기 싫어 되도록이면 “가지 않으면 좋은 곳”으로 인식해 왔다. 샤머니즘 신가에서는 영혼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저승차사에게 뇌물을 주고서라도 이승의 삶을 더 연장하고 싶은 욕구를 표현한 사설들이 여러 곳에 나온다. (계속)

※ 여기 연재되는 글은 필자 개인의 체험과 학술적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한 개인적 견해이며 특정 종교와 종교인 등과 논쟁이나 본지 편집방향과는 무관함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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