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정치경찰’로 뒤바뀐 정보경찰 개혁이 급선무

<김주언 칼럼> ‘정치경찰’로 뒤바뀐 정보경찰 개혁이 급선무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19.05.09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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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보도지침을 내려보내 언론을 통제하던 1980년대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 신문사 편집국에는 7개 정보기관의 기관원(언론사 출입기자)들이 신문사 편집국에 상주하며 기자들을 사찰했다. 기자들의 동향을 파악하여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 블랙리스트는 강제해직 언론인을 선별하는 기본자료로 활용됐다. 이들의 주임무는 보도지침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감시하는 것이었다. 국정원 보안사(기무사) 문공부홍보조정실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대부분 경찰 소속이다. 치안본부(경찰청)를 비롯한 일선 경찰의 정보관들이다. 이른바 ‘정보경찰’이다.
정보경찰은 범죄나 국가안보와 관련된 수사도 담당했다. 간첩을 조작하거나 이른바 ‘용공단체’ 등 조직사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재야인사나 학생, 언론인 등 정권에 비판적 민주인사들을 탄압하는 첨병에 섰다. 대표적 장소가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다. 박종철열사를 고문으로 숨지게 한 곳이다. 필자도 1986년 전두환정권의 보도지침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이곳에서 조사를 받았다. 잠 안재우기, 때리기, 협박 등은 다반사였다. 편집국에 기관원들이 출입하지 못하게 방해했다는 이유로 더 많은 추궁을 당했다. 
기관원들은 민주화 이후에도 없어지지 않았다. 범죄정보를 수집해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방송사 보도국과 신문사 편집국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임원실에 들어가 다리를 꼬고 앉아 거드름을 피우기 일쑤였다. 정권 고위층이나 경제계, 심지어 연예계 인사들이 이들의 먹잇감이었다. 이들이 수집한 정보는 지라시 형태로 여의도 증권가나 정치권에 나돌았다. 언론사 내부에는 이들에게 역정보를 흘려 반대세력을 억누르기 위한 방편으로 삼았던 부역자들도 많았다. 정보경찰의 폐해는 국정원이나 보안사 못지 않았다. 
이명박·박근혜정권에서 경찰은 친정부 댓글작업에 동원됐다. 이명박대통령이 “전 정부적으로 하라”며 댓글공작을 지시한 이후에는 1,800명이상의 댓글부대를 운용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들은 정권과 경찰에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3만7,800건이상의 댓글작업을 진행했다. 심지어 어버이연합 응원댓글도 달았다. “노구를 이끌고 파렴치한 빨갱이들과 맞서신 용감한 어버이연합 어르신들 진심으로 존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조현오 당시 경찰청장은 재판에서 “경찰의 정당한 업무”라고 뻔뻔한 해명을 늘어놓기도 했다.
정보경찰이 직접 선거에 개입했던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이명박정권 때인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정보경찰이 나경원 한나라당(자유한국당)후보의 ‘비선캠프’ 역할을 자임한 내부문건이 드러난 것이다. 야당후보 동향파악, 야권 시민단체 사찰, 선거판세 분석, ‘나경원 귀족 이미지’ 희석 방안, 선거전후 청와대의 국정운영 방안까지 담았다. “보수단체와 언론을 활용해 박원순변호사를 지원하는 측근인사들의 불법행위를 재조명, 좌파진영에 대한 경계심을 조성”해야 한다는 네거티브 공세도 제시됐다.
정보경찰은 “박원순변호사가 낮은 지지율과 종북좌파 이미지에도 불구, 단일화 성공으로 서울시장 보선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했다며 “천안함 폭침에 대한 참여연대의 유엔 서한문 발송 등 박변호사의 이념적 성향과 관련된 공세를 강화해 보수층 결집을 유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나후보는 선거 보름전 관훈토론회에서 “박후보의 선거캠프에 참여연대 인사가 많은데, 참여연대는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부 발표를 믿을 수 없다’는 서한을 유엔에 보냈다”고 공격했다. 제안이 현실화한 것이다.
정보경찰은 ‘맞춤형 정치컨설팅’도 시도했다. “‘학원재벌의 딸’ ‘온실 속 화초’ 등 귀족적 이미지가 강해 서민층으로의 표 확장성에는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보수단체와 언론을 활용해 박원순변호사를 지원하는 측근인사들의 불법행위를 재조명, 좌파진영에 대한 경계심을 조성”해야 한다는 네거티브 공세도 제시됐다. 당시 보수단체 연합체인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는 나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박후보를 선거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정보경찰의 제안 및 조치 사항이 선거과정에서 그대로 실행된 것이다.
박원순시장은 이에 대해 SNS를 통해 “이명박·박근혜정권에서 서울시장을 하는 동안 여론몰이, 정책에 대한 노골적인 반대, 박원순 제압문건, 국정원 불법사찰 등 많은 일들을 당했다”며 “정보경찰을 이용해 선거때부터 ‘박원순 죽이기’가 시작됐다니 참담할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박시장은 경찰의 진상조사와 나원내대표의 해명을 요구했다. 그는 “국정조사라도 해야 할 사안”이라고 꼬집었다.
정보경찰의 일그러진 행태는 박근혜정권때도 지속됐다. ‘진박공천’이 극심했던 2016년 4월총선 때는 호남을 제외한 전국 지역구에서 선거동향을 파악해 상부에 보고했다. 3,000명에 이르는 정보경찰이 정부여당의 승리를 위해 선거에 동원된 것이다. 경찰청 정보국은 ‘선거판세 분석 보고서’나 ‘권역별 보고서’를 작성했다. 투표를 염탐해 작성한 보고서는 청와대에 보고됐다. 보고서 전달역할을 맡은 경찰간부들은 초고속 승진이라는 혜택을 누렸다. 정권차원에서 정보경찰을 정권수호의 첨병으로 여겼던 반증이다.
정보경찰의 노골적 선거개입에 경찰간부들은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다. 총선개입 혐의를 받는 정창배 중앙경찰학교장(치안감)의 주장은 노골적이다. 정치안감은 “선거관련 문건 작성은 수십년간 계속된 관행”이라며 “정무직 공무원은 청와대를 보필하러 갔으니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박근혜정권 당시 청와대 치안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일하며 청와대와 정보경찰 사이 연락창구 구실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았으나 영장이 기각됐다.
정보기관의 민간인사찰이나 댓글공작, 선거개입은 문재인정부 출범이후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댓글부대를 운용한 국정원과 기무사 관련자들은 사법처리됐다. 국정원과 기무사의 국내정보 수집업무는 중단됐다. 언론사 등을 출입하는 정보관도 없어졌다. 게다가 기무사는 촛불항쟁 당시 비상계엄을 준비하는 ‘계엄문건’ 작성 사실이 드러나 아예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명칭이 변경됐다. 이들 두 기관은 정치개입을 금지하고 민간인사찰을 차단하는 방향으로 법령을 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경찰은 아직 구체적 움직임이 없다. 3,000명에 이르는 정보경찰은 범죄정보를 수집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활동중이다. 언론사 등에 드러내놓고 출입하지는 않지만, 정보수집 활동을 완전히 중단한 것은 아니다. 증권가 등에 나도는 지라시가 아직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점을 보더라도 그렇다. 국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검경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문무일검찰총장의 우려에 공감하는 이유이다. 정보를 독점한 경찰이 수사종결권마저 가져간다면 또다른 괴물을 키워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검경수사권조정은 검경의 ‘밥그릇 다툼’에 다름아니다. ‘정치검찰’로 일컬어지는 검찰의 권력 축소는 두말할 나위없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치경찰’로 뒤바뀐 정보경찰의 기능을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현재의 시스템을 그대로 놓아두면 어떤 정권이든 정보경찰을 활용하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선거법위반을 수사해야 할 경찰이 선거법을 위반하는 역설이 민주국가에 존재해서는 안된다. 국회는 앞으로 법안 심의과정에서 정보경찰 개혁방안을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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