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재원 칼럼] “나는 너를 책처럼 읽을 수 있어”

[지재원 칼럼] “나는 너를 책처럼 읽을 수 있어”

  • 기자명 지재원 기자
  • 입력 2019.05.08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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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UCLA 심리학과 앨버트 메라비언 교수는 사람들이 상대방을 파악하는 데에 몸짓 등 시각요소가 55%, 목소리 등 청각요소 38%, 언어는 7%의 영향을 미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가장 영향이 클 것같은 언어의 비중이 10%도 안되고 나머지 비언어(몸짓)의 비중이 90%가 넘는다는 연구내용은 심리학계뿐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쳐 4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메라비언 법칙’으로 통용되고 있다. 이 법칙에 의하면 상대방의 미세한 몸짓만으로 진실의 90% 이상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날 애리조나주 인디언보호구역에서 한 젊은 여성이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조사를 위해 불려왔는데, 그는 매우 당당했고 진술 내용도 그럴 듯 했다. 그는 피해자를 본 적이 없고, 들에서 목화밭 길을 따라가다가 왼쪽으로 돌아서 곧장 집으로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동료들이 그 진술을 기록하는 동안 계속 용의자를 관찰하던 나는 그가 왼쪽으로 돌아서 집으로 들어갔다고 말할 때 무의식적으로 손이 오른쪽을 가르키는 것을 보았다. 그가 무의식적으로 가리킨 방향은 정확히 성폭행 현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만약 내가 그를 관찰하지 않았다면 언어(왼쪽으로 돌아서)와 비언어(손으로 오른쪽을 가리키는 것) 사이의 불일치를 포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행동을 발견한 나는 즉시 그의 말이 거짓임을 알았고, 잠시 기다렸다가 그를 다시 대면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결국 그는 범행을 자백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특수요원 조 내버로가 사소해 보이는 용의자의 동작을 통해 범인을 잡아낸 사례 중의 하나다. FBI 근무시절 ‘인간 거짓말 탐지기’로 불렸던 그는 1961년 피그스만 침공 사태로 인해 미국으로 떠나온 쿠바 망명객 출신이다. 그때 여덟살이었던 소년은 영어를 전혀 할줄 몰라서 손짓발짓에 의존하며 낯선 미국생활에 적응해갔다. 그때 익힌 ‘몸의 언어’를 그후로도 계속 발전시켜서 나중에 FBI의 특수요원이 되었다. 그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엮은 책이 <FBI 행동 심리학>이다.

<나는 너를 책처럼 읽을 수 있어> 역시 미국 육군과 방위정보국에서 심문관으로 근무한 몸짓 언어 전문가 그레고리 하틀리가 펴낸 책이다. 몸짓 언어를 알면 대화를 나누지 않고도 상대방의 생각을 90% 이상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을 ‘리드(READ) 공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대화하지 않고도 상대방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몸짓 언어 파악은 범죄 용의자를 다루는데 특히 필수적이며, 날이 갈수록 중요도가 더해가고 있다. 범죄심리분석관 또는 범죄심리분석요원으로 불리는 ‘프로파일러’를 미국은 1972년 FBI에서, 우리나라는 2000년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공식 도입했다.

우리나라의 제1기 프로파일러인 배상훈교수(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는 “세월호 유병언 사체에 얽힌 의문도 강력팀 하나, 과학수사팀 하나만 지휘하게 해주면 3주안에 해결할 수 있다”고 장담한 바 있다. 수사여건만 잘 갖춰진다면 강력범죄나 미제사건 해결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피신하는 이웃주민들을 무차별 공격해 5명이 사망하는 등 21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이 지난 4월17일 발생했다. ‘진주 가좌주공아파트 방화살인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피의자와 이웃주민 사이에 불화가 심해 최근 경찰이 출동한 경우만 7건이나 되는 등 어찌보면 예고된 사고였다.

피의자 안인득(42)은 범행동기에 대해 임금체불 때문이라는 둥 이웃사람들이 자신을 못살게 굴었다는 둥 횡설수설하면서 여전히 사회를 향해 분노와 원망의 눈길을 보냈다. 70대 노모조차 가장 강한 처벌을 내려달라고 할만큼 가족들로부터도 외면당한 ‘범죄 피의자’다. 조현병 치료 경력도 있었고, 폭언과 악행 등으로 이웃 주민들이 수십차례 문제제기를 할만큼 사전에 범죄 조짐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넘어 어처구니없는 사건이다.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은 수사를 위해 프로파일러를 3명이나 파견했고, 법무부는 피해자들을 위해 경제적 지원과 장례, 의료, 장학지원 등을 신속하게 결정했고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참사가 일어난 아파트 주민들의 이주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범죄우려대상자를 강제입원시키는 이른바 ‘안인득 방지법’도 발의되었다.

신속한 사후대책도 중요하지만, 사전 예방은 전혀 불가능한 일인지 궁금해진다.

스티브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는 범죄를 예측해 범죄자를 단죄하는 최첨단 치안 시스템인 ‘프리크라임’이 등장한다. 프라임 특수경찰들은 시민들에게 가장 믿음직스런 든든한 존재. 그러나 2054년의 일이다. 앞으로 30년 이상 더 지나봐야 실현가능성을 알 수 있는 미래의 제도인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이미 발생한 사건의 수사에도 인력이 모자란다는 경찰에게 범죄의 사전 예방까지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범죄 사전 예방’ 시스템을 확대 도입하는 것은 어떨까?

행정안전부가 안전보안관, 교육청이 학교보안관, 서울시가 여성안심보안관 제도를 도입해 운용하고 있다. 이를 실효성있게 보완해서 지역 특성에 맞게 ‘(가칭)마을 보안관’ 제도를 둔다면, 최소한 면식범에 의한 진주 방화살인사건과 같은 범죄가 재발되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피의자의 사소한 몸짓 하나만으로도 범죄를 밝혀내는 세상이다. 더 이상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번 사건의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보낸다. <본사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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