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동화] 닥나무숲의 비밀-2.닥나무 숲(1)

[장편동화] 닥나무숲의 비밀-2.닥나무 숲(1)

  • 기자명 박월선 기자
  • 입력 2019.05.0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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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동저고리를 입은 여자 아이가 빨간색 댕기를 찰랑거리며 지우 앞으로 다가왔다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월선 기자] 지우가 마루에 누워서 소리쳤다. 하지만 모두 지소로 일하러 갔기 때문에 지우와 말동무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닥나무를 찌기 위해 아침부터 바쁘다고 했다.

지우는 어슬렁거리며 지소로 향했다.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모두들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닥나무를 큰 솥 안에 쟁여넣고 나서 뚜껑을 덮었다. 그리고는 그 위에 비닐을 여러 겹 덮었다. 증기가 빠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닥나무 찔 준비를 마친 할아버지가 지소 밖으로 나오더니 지우에게 다가왔다. 지우가 밖에서 구경하고 있는 걸 알고 있었나 보다.

“심심한 겨?”

“예, 할아버지. 무지무지 심심해요.”

지우는 밖에 나가서 놀아도 되는지 물었다.

“근방에서 놀아야 혀.”

“예.”

지우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얼른 밖으로 나왔다. 어디로 갈까 하다가 숲 쪽으로 가는 길로 향했다. 할아버지 댁 돌담을 따라 나 있는 길이었다. 돌담 너머로 건조장과 지소가 보였다. 돌담을 따라 걷다가 담장 안을 넘어다보니 건조장 목판 위에 여러 장의 한지가 널려 있는 게 보였다.

어디선가 향긋한 냄새가 풍겨 왔다. 냄새를 따라 걸어갔더니, 메밀밭이 보였다. 천연잿물을 만들기 위해 키운 것이다. 메밀을 태워 잿물을 만들어 써야 좋은 한지가 나온다고 했다.

바람이 상쾌했다. 지우는 입을 크게 벌려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 순간 한지 한 장이 날아와 지우 머리 위를 잠시 맴돌더니 더 높이 날아올랐다. 건조장의 목판 위에 있던 한지 같았다.

‘어, 어!’

한지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지우는 얼른 달려갔다. 한지는 가까워질 듯하다가도 금세 저만치 앞에 있었다. 지우는 더 빨리 뛰었다. 하지만 한지는 점점 숲속 깊이 날아들어갔다. 마치 숲이 마법을 부려 한지를 휘감아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한참을 달리던 지우는 결국 가쁜 숨을 몰아 쉬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한동안 숨을 고르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숲속 깊숙히 들어온 것 같았다.

숲은 조용했다. 지우는 덜컥 겁이 났다. 아무리 할아버지 댁 뒷산이라고는 해도 혼자서 이렇게 숲속 깊이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이제는 한지도 어디로 날아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지우는 그만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디에선가 물 흐르는 맑고 경쾌한 소리가 들려왔다.

‘숲속에 계곡물이 있었나?’

지우는 저도 모르게 숲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뒤엉킨 가지를 헤치고 더 깊숙히 들어가자 물소리가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운장산에서 흘러 온 물이 계곡을 따라 흐르고 있었다. 물안개가 아롱아롱 피어 올랐다. 물안개가 춤을 추는 선녀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순간, 안개 사이로 희미한 그림자가 보였다가 금세 사라졌다. 아까 본 한지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지우는 너럭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도대체 저 그림자는 뭘까?”

“도대체 저 그림자는 뭘까?”

누군가 지우의 말을 따라했다.

“누-누구야?”

“누-누구야?”

지우의 말이 메아리처럼 다시 들렸다. 놀란 지우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그 순간 숲에서 자박자박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너럭바위에 앉아 있던 지우가 벌떡 일어났다. 바짝 긴장을 한 탓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바로 그때, 색동저고리를 입은 여자 아이가 빨간색 댕기를 찰랑거리며 지우 앞으로 다가왔다.

“어, 엄마야!”

지우가 겁에 질려 소리쳤다.

“놀라지 마. 너를 해치려는 게 아니야!”

여자 아이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깊숙한 곳에서 낯선 아이를 만나다니, 지우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닥나무숲의 비밀(저자 박월선)
닥나무숲의 비밀(저자 박월선)
데일리스포츠한국(20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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