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동화 닥나무 숲의 비밀-1. 할아버지 댁으로

장편동화 닥나무 숲의 비밀-1. 할아버지 댁으로

  • 기자명 박월선 기자
  • 입력 2019.05.01 15:06
  • 수정 2019.05.0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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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무슨 일이야? 우리 또 이사가?”, “그 아저씨들이 또 온 거야?”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월선 기자] 지우가 사는 아파트 앞에 이삿짐 트럭이 한 대 서 있었다.

‘누가, 이사를 가나?’

지우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차 안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 지우의 눈에 낯익은 물건들이 보였다.

불안해진 지우는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탔다.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지우가 급하게 거실로 들어서자, 엄마가 정신없이 짐을 싸고 있는 게 보였다.

“엄마, 무슨 일이야? 우리 또 이사 가?”

“지우야, 우선 짐부터 싸! 꼭 필요한 것들만 골라서.”

“그 아저씨들이 또 온 거야?”

지우는 며칠 전 집에 들이닥친 덩치 큰 아저씨들이 떠올랐다. 그 아저씨들은 현관문을 부서뜨릴 것처럼 발로 쾅쾅 걷어 차더니 결국 집 안까지 함부로 들어왔다.

지우가 놀라서 아빠의 휴대 전화 번호를 계속 눌러 봤지만 신호음만 들릴 뿐이었다. 험악하게 생긴 아저씨들이 지우네 살림살이들을 마구 부수고 당장 아빠를 찾아 내라고 소리쳤다. 지우는 무섭고 끔찍했다.

“지우야, 이젠 여기에서 살 수 없게 되었어.”

은행에서 날아온 빨간 글씨의 독촉장이 거실 바닥 한구석에 펼쳐져 있었다. 그 종이를 보는 순간, 지우의 몸에 남아 있던 힘이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어느새 지우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룩 흘러내렸다.

“그럼 어디로 가?”

“우선은 할아버지 댁으로 가기로 했어. 어서 서둘러.”

“아빠는?”

“할아버지 댁에 가 있으면 아빠도 곧 그리로 오실 거야.”

엄마가 지우의 볼에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 주며 말했다.

“짐, 다 실었습니다.”

엄마를 도와서 짐을 옮기던 트럭 운전사 아저씨가 큰 소리로 말했다.

“네, 네.”

데일리스포츠한국(2019.5.1일자)
데일리스포츠한국(2019.5.1일자)

엄마가 다급히 대답하며 현관을 나섰다. 엄마는 너무 급하게 서두른 탓에 짝이 다른 신발을 신고 있는 줄도 몰랐다.

지우는 현관문을 나서다 말고, 잠깐 텅 빈 집 안을 둘러보았다. 미처 챙기지 못한 짐들과 쓰레기와 먼지들이 뒤섞여 뒹굴고 있었다. 지우의 마음처럼 이것저것 마구 뒤섞여 어지럽기만 했다.

“지우야, 얼른 가야지.”

트럭에 선뜻 타지 못하는 지우를 엄마가 잡아 끌었다.

또 전학을 가는구나 하고 지우는 생각했다. 벌써 세 번째 전학이다. 아빠의 사업이 망할 때마다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서둘러 떠나야 해질녘에 도착합니다.”

아저씨가 다시 한 번 재촉했다.

엄마와 지우가 차에 오르자마자, 트럭은 속력을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예전에 방학을 하고 할아버지 댁에 갈 때와는 기분이 너무 달랐다. 그땐 차창 너머로 빠르게 지나쳐 가는 시골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신이 나고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오늘 지우의 기분은 영 엉망이었다. 무언가에 꽉 눌린 것처럼 가슴이 답답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할아버지 댁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우는 잠시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아무리 양팔을 휘저어대도 더 깊이깊이 빠져드는 물속에서 자신이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우는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지우야, 어서 일어나. 이제 다 왔어.”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꿈결처럼 들리는 엄마의 목소리에 지우는 눈을 떴다.

차에서 내리자 노을빛으로 물든 할아버지 댁의 기와가 보였다.

엄마와 지우는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곳에서 살아야 한다고?’

지우는 우뚝 멈추어 섰다. 오늘따라 할아버지 댁은 처음 와 보는 곳처럼 낯설었다. 저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닥나무숲의 비밀(저자 박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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