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풍경이 있는 아침] 33 신경림, ‘별’

[시와 풍경이 있는 아침] 33 신경림, ‘별’

  • 기자명 박상건 기자
  • 입력 2019.04.26 08:02
  • 수정 2019.04.26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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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눈 어두우니, 더 많은 것들이 보이는 이유

나이 들어 눈 어두우니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서울 하늘에 별이 보인다

 

하늘에 별이 보이니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고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니

사람들 사이에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탁한 하늘에 별이 보인다

눈 밝아 보이지 않던 별이 보인다

 

- 신경림, ‘별’ 전문

 

어둠이 채 가시기 전이었다. 새벽 지하철역에서 첫차를 기다리며 서성이다가 스크린도어에 걸린 이 시를 읽는 순간, 그 무엇인가, 별똥 같은 것이 내 뇌리를 강하게 울렸다.

 

“나이 들어 눈 어두우니 별이 보인다/반짝반짝 서울 하늘에 별이 보인다”

인생사, 사는 만큼 보인다. 눈빛만 보아도 안다. 나이가 들면 침침한 눈, 보이지 않아도 진탕의 세월 속에서 달군 영혼의 별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눈 부벼도, 부비지 않아도 세상을 다 읽을 수 있는 영혼의 별이 있다. 보지 않아도 보이고 듣지 않아도 들리는 것이다. 시골 하늘도 아닌 서울 하늘이다. 눈 뜨고 코 베어 간다는 서울이다.

자연과 소통이 가능한 시인의 연륜에는 밤이 더 평안하다. 어둠이 짙게 내린 숲에서 하늘을 바라보라. 숲의 잔가지 하나, 그것을 흔들어대는 바람결도 보인다. 하물며 온몸에 빛을 머금은 별이라면 얼마나 선명하게 보이겠는가. ‘눈 어두우니’가 아니라 사실 ‘눈 더 어두워도’ 시인의 가슴으로 켜는 그 영혼의 별은 하늘의 별보다 더 선명 할 수밖에 없다.

그런 별처럼 밝은 눈으로 “하늘에 별이 보이니/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고”,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니” 그런 마음의 눈이라면, 그런 별이 되어 바라본다면 “사람들 사이에 별이 보인다”. 좋은 사람, 착한 사람, 척 하는 사람들을 찰나에 분간할 수가 있다. 사람들 사이의 먼지도 보이고, 보는 눈에 따라서는 먼지 꽃이 보이기도 한다.

“반짝반짝 탁한 하늘에 별이 보인다”

어둔 하늘도 아니고, ‘탁한’ 하늘이다. 탁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용쓰며 살아가는 사람들, 뒤로 넘어져도 코 깨지는 사람과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사는 사람들 속에서 ‘진국’을 가려내줄 아는 게 시인의 눈이다.

신경림 시인은 1936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났다. 동국대 재학시절인 1956년 ‘문학예술’로 등단했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을 지냈으며 현재 동국대 석좌교수이다. 시집으로 ‘갈대’, ‘목계장터’, ‘농무’, ‘뿔’, ‘민요기행’ 등 다수가 있다. 만해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4.19문화상, 단재문학상, 대산문학상, 공초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문학평론가 최원식은 신경림 시인을 “우리 시대의 두보(杜甫)”라고 일컬었다. 그렇게 시인은 늘 민초들과 함께 하는 삶과 시를 써왔다. 민초의 아픔과 눈물을 진한 가락으로 노래해왔다. 시인의 가락은 쫄깃쫄깃하거나 푸른 강물과 징소리 같은 울림이 있다. 그래서 신경림 시인을 영원한 ‘민중적 서정시인’이라고 부른다.

글, 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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