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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언 칼럼> 명분도 승산도 없는 전략적 봉쇄소송
  • 김주언 논설주간 newmedia54@hanmail.net
  • 승인 2019.04.26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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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5주기를 맞았으나 아직도 명확한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동안 검경의 수사와함께 두차례 세월호 특조위가 구성돼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박근혜정권의 집요한 방해공작으로 미완에 그치고 말았다. 선사인 청해진해운 관련자들과 세월호 선원 등 일부만 사법 처리됐을 뿐이다. 수사 및 조사를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고위관계자들은 사법처리대상에서 제외됐다. 급기야 세월호유족과 시민단체들이 관련자 18명의 명단을 발표하고 수사를 통한 처벌을 요구하고 나섰다. 명단에는 당시 법무부장관이었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도 포함돼 있다.

박근혜정권은 세월호참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촛불의 힘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참사의 진상을 은폐하고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국민의 분노만 샀을 뿐이다. 특히 박근혜 전대통령의 참사당일 행적이나 조문과 관련한 연출의혹 등에 대해 ‘국민입막음 소송’으로 대응했다. 참사초기 해경 구조와 관한 의혹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홍가혜씨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홍씨는 4년반만에 대법원에서 무죄확정 판결을 받았으나 ‘허언증 환자’나 거짓말쟁이 등의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참사 당시 박 전대통령의 행적과 관련한 합리적 의혹에 대해서는 김기춘 전비서실장 등 청와대가 명예훼손으로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일본의 산케이 신문이 세월호참사 당일 박 전대통령 행적의 의혹을 다룬 보도에 대해 검찰이 가토 다쓰야 서울지국장을 구속 기소해 국제적 비난을 샀다. 가토 지국장은 무죄판결을 받고 풀려나 귀국했다. 그는 조선일보 칼럼을 토대로 기사를 작성했으나 조선일보 기자에게는 법적 책임을 묻지 않았다.

참사이후 박 전대통령이 안산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던 당시 할머니를 위로하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됐다. 할머니는 유족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CBS는 “청와대측이 할머니를 섭외해 조문장면을 연출했다”고 보도했다. 대통령 비서실은 CBS를 상대로 8,0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어 박 전대통령이 진도체육관을 방문해 가족을 잃고 홀로 구조된 5세 여아를 위로하는 장면이 보도됐다. 한겨레는 ‘쇼크상태였던 아이가 왜 박대통령 현장방문에?’라는 제목으로 연출의혹을 제기했다. 김 전실장 등은 한겨레에도 8,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유경근 세월호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새누리당 지도부가 ‘세월호 유가족이 돈을 더 달라고 한다’는 말을 했다며 가족이라고 지칭하지 말고 누가 그런 요구를 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 유대변인이 지도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했다가 취하했다. 4ㆍ16연대 박래군 공동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세월호참사 당시 대통령의 행적을 알 수 없다며 “청와대를 압수 수색해 마약을 하고 있었는지 아닌지 확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검찰은 박 전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해 박대표를 기소했다.

이명박-박근혜정권 9년동안 많은 시민이 부당·부패한 국가권력의 행사에 집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했다. 정권은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기 보다는 공권력을 남용해 억누르는 방식을 택했다. 더 나아가 제주 해군기지 반대 강정마을 시위와 쌍용자동차 파업,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세월호 범국민대회, 민중총궐기 집회 등 집회시위 주최자 및 참가자에 대해 거액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강정마을 쌍용차, 희망버스 시위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청구액만 62억6,000만원에 이른다.

이처럼 시민의 공적 발언 및 참여를 봉쇄하기 위한 국민입막음 소송을 ‘전략적 봉쇄소송’(SLAPP : 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이라고 부른다. 승소 가능성이나 승소의 이익이 크지 않음에도 국가가 국민을 대상으로 소송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어 자유로운 집회나 정부 비판을 위축시키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려는 목적으로 남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나왔다. 실제로 국가는 수억원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는 극히 일부만 인용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대표적 사례가 한진중공업 ‘2차 희망버스’ 사건이다. 2011년 한진중공업이 노동자 170명을 해고하겠다고 밝히자 정리해고를 반대하는 시민의 집회가 ‘희망버스’ 사건으로 이어졌다. 경찰은 피해경찰관 14명을 내세워 송경동 시인 등 6명을 상대로 “시위진압 과정에서 경찰이 다치고 장비도 파손됐다”며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지난 1월 송시인이 경찰관 4명에게 488만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도록 최종 판결했다. 2014년 1심재판부의 판결에 비하면 훨씬 축소된 것이다. 김제완 변호사는 전략적 봉쇄소송은 소권의 남용이기 때문에 “법리적으로나 정책적으로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경찰이 시민의 집회나 시위를 막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장비가 망가지기고 집회 참여자나 경찰관이 다치기도 한다. 우리 헌법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기본권으로 인정한다. 그렇다면 시위진압과정에서 망실된 장비나 부상한 경찰관에 대한 치료비는 누가 부담해야 할까. 김변호사는 “당연히 국가가 예산으로 지원하여야 한다”고 잘라 말한다. 공무수행중 부상한 경찰관들이 집회 주최자에게 치료비를 받아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미국에서는 이를 ‘소방관의 원칙’(fireman’s rule)이라고 한다. 강도를 잡다가 부상한 경찰관이 강도를 상대로, 진화작업 중 부상한 소방관이 방화범을 상대로 개인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필요가 없다는 원칙이다. 악의적 가해자를 잡아내 형사처벌하는 것은 별도로 하더라도 국가가 민사소송을 이용해 집회 주최자 및 참가자들을 괴롭혀 입을 막아서는 안된다. 특히 피해 경찰관을 부추겨 국민을 상대로 소송하도록 하여 국민과 공무원을 이간질하는 행위도 금지돼 있다.

미국 수정헌법 1조는 “국민이 평화적으로 집회할 권리와 불만의 구제를 정부에 청원할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따라 20개이상의 주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소송이 제기된 경우 원고가 승소 가능성을 사전에 입증하지 못하면 소송을 조기에 각하하도록 하고 있다.

국내에서 법무부는 전략적 봉쇄소송을 제한하기 위한 법률안 마련에 착수했다. 국가가 표현의 자유 등 헌법상 권리행사를 위축시키려는 부당한 목적으로 손해배상소송을 남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이다. 법무부는 이를 위해 한국민사소송법학회와 연구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앞서 안호영 민주당 의원은 의사표명의 자유와 청원의 권리 등 국민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민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피소자가 공공의 이해에 관한 의견표명이 소송의 배경이라는 점을 법원에 소명하고, 법원이 인정할 경우 소송을 기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이다.

참여연대는 국가기관과 공직자들이 명분과 승산도 없으면서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막기 위해 소송을 남발하는 행태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법원이 “국가는 명예훼손 피해자가 될 수 없고 공직자의 도덕성과 청렴성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함에 있어 신중할 것도 요구했다. 이를 위해서는 명예훼손죄와 모욕죄 조항 개정을 내용으로 하는 형법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킬 것을 촉구했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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