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정신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4월,정신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 기자명 박상건 기자
  • 입력 2019.04.12 07:57
  • 수정 2019.04.12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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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풍경] 31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과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전문

 

이 시는 1967년 발간한 현대한국문학전집 제18권(52인 시집)에 실려 있다. 시에서 ‘껍데기’, ‘쇠붙이’는 민족,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외세, 질곡과 왜곡을 일삼는 지배 권력, 기득권 세력 등을 상징한다.

“껍데기는 가라/사월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껍데기는 가라”, 사월은 바로 4.19 혁명. 민주, 자주, 부정부패 없는 나라를 염원하던 젊은이들의 정신만 남고 껍데기는 가란다. 꽃 피는 4월이지만, 꽃잎처럼 떨어져간 청춘들이 쓴 역사의 뒤안길을 돌아보게 한다.

다시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껍데기는 가라/그리하여, 다시/껍데기는 가라”, 1894년 동학 농민혁명의 그 순수한 절규만 남고 ‘다시/껍데기는 가라’라고 강조한다.

‘아사달과 아사녀’는 무영탑 스토리를 접목한 것이다. 불국사는 이름처럼 불국을 재현한 절이다. 불국사 석가탑은 백제의 석공 아사달의 지원을 받아 만들었는데, 몇 해가 지나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아사녀는 불국사를 찾았다. 그러나 아녀자가 불사를 조성하는 곳에 들어가면 안 된다 하여 무영지에서 지성으로 기도하며 기다리라 했다. 탑이 완성되면 그림자가 무영지에 비칠 것이니 그때 서로 만날 수 있다는 것. 지성으로 기도하며 기다렸지만 끝내 그림자는 비추지 않았다. 기다림에 지친 아사녀는 무영지에 몸을 던졌다. 석가탑을 ‘그림자 없는’ 무영탑이라 부른 이유다.

시인은 신라시대 현실과 분단현실을 비유했다. “아사달과 아사녀가/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부끄럼 빛내며/맞절할지니”, 남과 북이 ‘알몸으로 부끄럼만으로’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한라에서 백두까지/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라고 노래한다.

우리 남과 북은 반드시 서로 마주 앉아 맞절할지니, 그렇게 통일을 이룰 것이니, 한민족만 남고 외세는 가라한다.

시인은 1930년 충남 부여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948년 11월 이승만 정권의 토지개혁 미실시와 친일 미청산에 항의하는 동맹휴학으로 사범학교에서 퇴학당했다. 굶주림 때문에 게를 먹는 바람에 디스토마에 감염돼 40세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시인의 작품 중 ‘금강’, ‘껍데기는 가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등은 역사의식이 남다른 명시로 꼽는다. 시인은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로 등단했다. 시집 ‘아사녀’, 장편서사시 ‘금강’, 평론 ‘시인정신론’ 등이 있다.

글, 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신동엽 문학관
신동엽 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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