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71돌 맞은 제주4·3··· ‘동백꽃의 아픔’을 치유하려면

<김주언 칼럼> 71돌 맞은 제주4·3··· ‘동백꽃의 아픔’을 치유하려면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19.04.04 08:06
  • 수정 2019.04.24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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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3일 제주 4·3사건에 대해 71년 만에 처음으로 유감을 표명했고, 경찰청장도 무고한 양민이 희생된 것에 대해 사죄했다. 3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제주4·3 제71주년을 맞아 열린 '4370+1 봄이 왐수다' 추념식에서 묵념하고 있는 민갑룡 경찰청장(왼쪽). 연합뉴스
국방부는 3일 제주 4·3사건에 대해 71년 만에 처음으로 유감을 표명했고, 경찰청장도 무고한 양민이 희생된 것에 대해 사죄했다. 3일 오전 서울광장에서 제주4·3 제71주년을 맞아 열린 '4370+1 봄이 왐수다' 추념식에서 묵념하고 있는 민갑룡 경찰청장(왼쪽). 연합뉴스

“돌담 하나, 떨어진 동백꽃 한송이, 통곡의 세월을 간직한 제주에서 ‘이 땅에 봄은 있느냐?’ 여러분은 70년동안 물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제주의 봄을 알리고 싶습니다.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합니다. 더이상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문재인대통령은 지난해 ‘제주4·3’ 70주년 추념식에서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다. 문대통령은 “유족과 생존 희생자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정부차원의 조치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배·보상과 국가 트라우마센터 건립 등 입법이 필요한 사항은 국회와 적극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1년이 흘렀지만 ‘제주의 봄’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국가의 배상과 보상은 물론, 국가트라우마센터 건립도 제자리 걸음만 되풀이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배상과 보상 대상이 1만4,000여명으로 보상비용만 1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트라우마 치유센터는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좌초됐다. 2017년 국회에 상정된 4·3특별법 개정안은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행안위 법안심사소위가 한차례 열렸을 뿐이다. 완전한 해결은 국회 앞에서 멈춰 있는 셈이다.
제주4·3은 1948년 4월3일 소요사태로부터 시작됐다.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수만명의 민간인이 희생됐다. 남로당 제주도당이 군경과 서북청년단 등의 폭압에 반발해 경찰서 등을 습격하면서 시작됐다. 8월15일 수립된 이승만정권은 군대를 증파하고 계엄령을 선포하며 강경진압에 나섰다. 민간인을 집단 살상하고 중산간 마을의 95%이상을 불태웠다. 한국전쟁 때까지 남아 있던 무장대를 진압했다. 1954년 9월 한라산 출입이 허용되면서 7년여의 악몽은 막을 내렸다.
이 와중에서 제주도민 28만명 중 10%이상이 살상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정부에서 제주4·3사건 희생자 및 유족으로 인정한 인원은 모두 7만8,741명(희생자 1만4,363명, 유족 6만5,378명)에 달한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는 최근 희생자와 유족 5,081명을 추가했다. 이중 희생자는 130명, 유족은 4,951명이다. 희생자 중에는 사망자 87명, 행방불명자 24명, 수형자 19명이다. 수형자중 4명은 생존자이다. 아직도 1만6,311명(희생자 212명, 유족 1만6,099명)의 심사가 남아 있다.
바다로 둘러싸여 고립된 섬 제주도는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였다. 토벌대는 이념과 상관없이 민간인을 마구잡이로 처형했다. 총살은 기본이었다. 본보기 참수형도 자행됐다. 친인척이나 면식있는 사람들은 공개 처형됐다. 소의 생식기를 건조시켜 만든 채찍으로 태형을 가하거나 돌팔매질을 하게 하기도 했다. 목사가 손가락으로 이른바 ‘부역자’를 가려냈다는 증언도 나왔다. 기독교 신자들은 죽음을 면했다. 목사가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제주도민은 아직도 목사를 싫어한다고 한다.
제주도는 한동안 슬픔의 섬, 침묵의 섬으로 남아 있었다. 강요된 금기 속에 반세기 가량 국가권력에 의해 은폐되고 왜곡됐다. 광풍이 그친 1956년 서귀포시 대정읍 섯알오름에서 유족이  방치된 132구의 시신을 수습했다. 유족은 ‘132분의 조상들이 한날 한시 한곳에서 죽어 뼈가 엉기어 하나가 되었으니 후손들도 모두 한 자손’이라는 의미로 ‘백조일손’(百祖一孫)이란 묘비를 세우고 통곡했다. 1960년 4월혁명 이후 국회에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에 나섰으나 이듬해 5·16군사쿠데타로 다시 강요된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침묵은 1978년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이 발표되면서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1949년 1월 조천읍 북촌리에서 벌어진 민간인 집단학살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해낸 작품이었다. 대학가와 학자 언론의 진상규명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이후 제주도민의 추모 및 진상규명 촉구대회로 발전했다. 4·3관련 정부자료 공개, 연좌제 폐지, 미군정의 4·3학살책임 인정, 국회의 4·3진상조사 등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1993년 김영삼정부는 제주도의회에 4·3특별위원회를 구성해  피해신고를 받는 등 공공기관에서 4·3문제를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민주화 이후에야 진상규명 작업이 본격화했다. 1998년 김대중 전대통령은 “제주4·3은 공산폭동이지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으니 진실을 밝혀 누명을 벗겨줘야 한다”고 말했다.  2000년에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보수진영의 끝없는 공격을 겪으면서도 2003년 10월 진상조사 보고서가 채택됐다. 노무현 전대통령은 2003년 10월 사건발생 55년만에 국가원수로서는 처음 사과했다. 2005년에는 국가차원의 첫 공식사과가 이뤄졌다.
희생자의 넋을 위령하기 위한 기념사업도 이어졌다. 제주4·3 평화공원 조성을 비롯해 유해발굴, 유적지 복원, 위령제 등도 진행됐다. 정부는 2014년 4월3일을 기념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정부는 무성의로 일관했다. 평화공원 조성사업은 차질을 빚었다. 정부차원의 사과는 물론, 대통령의 현장방문도 없었다. 게다가 보수진영에서는 아직도 ‘남한 적화기도 무장반란폭동’이란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일부 보수단체는 수차례 소송을 제기하고 이념공세를 퍼붓고 있다.
그래선가. 자유한국당은 아직도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의 처리에 반대한다. 송언석의원은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어야 할지 솔직히 입증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이미 4·3재단을 설립해 지원했는데 또다시 배·보상하는 것은 중복지원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유민봉의원은 “어디까지가 명예회복이고 어디까지 보상이 이뤄져야 할지 정리하는 게 어려운 부분”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열린 위령제나 추념식에 단 한차례도 참석하지 않았다.
4·3특별법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유족은 정부 여당을 향해 날을 세웠다. 양조훈 4·3평화재단 이사장은 “문재인대통령이 4·3해결을 위한 지원을 공약했는데 후속조치가 하나도 이뤄진 게 없다”고 지적했다. 문재인정부는 ‘제주4·3사건의 완전한 해결’을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했다. 유족회는 “7만여 유족이 한맺힌 삶을 살고 있는데 특별법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식물국회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국회는 특별법 개정안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한국당의 반대로 제대로 처리될 지는 미지수이다.
제주4·3 평화박물관에는 비문이 없는 백비가 누워 있다. 아직 바른이름(正名)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건’ ‘사태’ ‘항쟁’ ‘학살’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아직 진상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건경위는 물론, 책임소재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희생자와 유족은 70년동안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려왔다. ‘빨갱이’로 몰려 핍박받아온 세월이 서러울 따름이다. 희생자의 진혼을 위해서라도 정명이 새겨진 비석이 바로세워져야 한다. 그러려면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 제주도 바닷가에 흐드러진 동백꽃이 아픈 상처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한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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