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풍경이 있는 아침] 박상건, ‘썰물이 밀물을 만났을 때’

[시와 풍경이 있는 아침] 박상건, ‘썰물이 밀물을 만났을 때’

  • 기자명 박상건 기자
  • 입력 2019.03.08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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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야 할 때 떠날 줄 아는 썰물소리는 아름답다”

멈출 수 없어 손사래치는 포구에

잔잔히 떠도는 삶의 잔주름들

뒤돌아보면 썰물들은 비우는 시간

들려오는 것은 밀물소리만 아련해

 

떠나야 할 때 떠날 줄 아는

썰물소리는 아름답다

 

절인 삶의 뻘밭을 들여다 보면

빛살무늬 무수히 수놓은 썰물들의 역사가 보인다

밀물을 끌어당겨 상생하는 뻘밭에

그 물줄기 층층이 쌓여

순은의 물잎새 움트고

 

햇살들 부싯돌 튀는 저 벌판으로

물새 떼 띄워 보내며

낙법으로 다진 갯돌밭에 푸른 함성 자욱이 쏟아진다

 

- 박상건, ‘썰물이 밀물을 만났을 때’ 전문(시와시학, 1999년 겨울호)

 

바다의 심연, 그 썰물의 바다를 찬찬히 들여다보노라면 삼라만상이 함축돼 있다. 기쁨과 슬픔, 절망과 희망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뻘밭에 아로 새겨진 길을 따라 미생물도 저마다 삶의 길을 내며 간다. 그 길 위에 “잔잔히 떠도는 삶의 잔주름들”이 보이고 윤회하는 삶 속에 “뒤돌아보면 썰물들은 비우는 시간”이다.

바다는 비운 만큼 다시 채우며 수평을 이루며 사는 지혜와 우주의 섭리를 일깨워준다. 수평선을 오고가며 수평으로 살아가는 어부의 삶과 수많은 선박들의 항해가 가능한 것은 바다가 수평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경쟁과 욕망에 집착한 수직적 삶은 바다에서 허락되지 않는다. 산길은 정상을 차지하려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좁고 가파르듯이, 바다는 위로 솟구치려는 바람이 거셀수록 침몰하는 길밖에 없다.

거대한 파도도 끝내는 백사장에서 말없이 수평으로 드러눕는다. 생을 마감한 빈 조개껍데기들이 백사장의 마지막 적막을 해조음으로 갈무리하는 풍경을 보노라면, 자연도 삶도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다시 만나는 세월의 순환 속에서 새로운 길과 희망이 움트는 것임을 일깨워준다. 하물며 유한한 인생살이야 말해서 무엇 하랴. 삶도 명예도 역사도 떠나야 할 때 떠날 줄 아는 여유와 배려가 아름다운 법이다. 그래서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사는 저 바다에서, “떠나야 할 때 떠날 줄 아는/썰물소리는 아름답다”

글, 사진: 박상건(시인. 동국대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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