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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언 칼럼> 친일잔재 청산과 증오표현 '빨갱이'의 추방
  • 김주언 논설주간 ysk7474@daum.net
  • 승인 2019.03.0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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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빨갱이란 단지 공산주의 이념의 소지자를 지칭하는 낱말이 아니었다. 빨갱이란 용어는 도덕적으로 파탄난 비인간적 존재, 짐승만도 못한 존재, 국민과 민족을 배신한 존재를 천하게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는 어떤 비난을 하더라도 감수해야만 하는 존재, 누구라도 죽일 수 있는 존재, 죽음을 당하지만 항변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빨갱이의 탄생’ 저자인 김득중박사의 말이다. 김박사는 여순사건으로 빨갱이가 탄생했다고 본다. 이때부터 빨갱이는 정치적 반대파를 낙인찍는 말로도 사용돼온 것이다.

빨갱이는 특정 정치인이나 태극기부대 집회현장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태극기 집회 참여자들은 ‘박근혜 석방’ 등 자신들의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싸잡아서 빨갱이로 매도한다. 직장에서는 심지어 노동운동에 열심인 노조원을 빨갱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그저 싫어하는 사람을 빨갱이로 치부하여 ‘상종하지 못할 인간’ 쯤으로 여기는 의식의 분열현상이다. 이들의 눈에는 진보성향의 사람들은 모두 빨갱이가 된다. 최근 들어서는 ‘종북’이나 ‘좌빨’이라는 비속어로 변형돼 악용된다.

정치권에서도 때 아닌 ‘빨갱이 논란’이 빚어진 적이 있다. 대표적 인물이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와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다. 홍 전대표는 지난해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느닷없이 “창원에는 빨갱이들이 많다, 성질같아서는 두들겨 패버리고 싶은데…”라고 내뱉어 거센 반발을 일으켰다. 하의원은 홍전대표가 ‘빨갱이장사를 하고 있다’며 몰아붙였다. 하의원은 지난해 “미투를 빨갱이 장사에 악용”한다거나 “빨갱이장사 못하니까 끝까지 (문재인정부의 남북회담에)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홍전대표를 공격하기도 했다.

빨갱이란 말이 정치적 반대파를 공격하는 용어로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은 이승만 전대통령이다. 1947년 4월 북한에 주둔한 소련군이 자국에 보낸 문서에는 빨갱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4월 27일 이승만 환영집회에서 ‘빨갱이들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가 나왔다.”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는 1948년 여순사건 당시에는 “아무나 죽여 놓고도, 죽었기 때문에 빨갱이가 되는 시대였다”고 한탄했다. 실제로 여순사건에서는 수많은 양민이 빨갱이로 몰려 살해됐다.

빨갱이라는 말을 증오를 부추기는 혐오어로 만든 사람은 박정희 전대통령이다. 박 전대통령은 여순사건으로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나 동료들을 밀고한 뒤 목숨을 건졌다. 이후 군에 복귀한 박 전대통령은 빨갱이라는 말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아예 이른바 빨갱이를 척결대상으로 삼았다. 1963년 대통령선거 직전 윤보선후보가 자신을 빨갱이라고 몰아세우자 박정희후보는 격분했다. “내가 빨갱이라면 이 나라가 2년동안 빨갱이 치하에 있었단 말인가, 선거만 끝나면 모조리 가만두지 않겠다.”

박정희정권 치하에서 ‘빨갱이 사냥’의 서막이 열린 셈이다. 박정희는 정적을 제거하는 데 빨갱이란 증오의 언어를 활용했다. 통치이념으로 ‘반공’을 내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정권이 위기에 닥칠 때마다 간첩과 조직사건을 조작하고, 북한의 위협을 내세워 민주인사들을 탄압했다. 수많은 유학생들이 간첩으로 몰려 감옥에서 일생을 보내야 했고, 순박한 시민이 간첩으로 조작됐다. 민주화를 외치는 학생들은 ‘용공’(빨갱이)으로 몰려 고초를 겪었다. 유신독재시절엔 ‘사법살인’으로 일컬어지는 인혁당 사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전두환정권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군부쿠데타에 반대하는 광주시민을 총칼로 학살하고, 이를 김대중 전대통령의 내란음모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뒤집어 씌웠다. 김 전대통령은 1972년 유신독재시절부터 ‘빨갱이’로 몰려 집중사찰과 제거대상이었다. 자유한국당 3인방 의원과 극우인사 지만원씨의 5.18망언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심지어 지씨는 “김 전대통령이 북한군 특수부대를 불러들여 폭동을 일으켰다”고 날조했다가 유죄판결을 받기도 했다. 자유한국당 일부의원과 극우세력은 아직도 ‘빨갱이 프레임’을 반대세력 비난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대사의 오점을 고려하면,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100주년 기념사는 시의 적절하다. 문대통령은 “지금도 우리사회에서 정치적 경쟁세력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도구로 빨갱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고, 변형된 색깔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청산돼야 할 친일잔재’라고 강조했다. 문대통령은 “일제 독립군을 비적으로, 독립운동가를 사상범으로 몰아 탄압했고 여기서 빨갱이라는 말도 생겨났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빨갱이는 “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까지 모든 독립운동가를 낙인찍는 말”이었다는 설명이다.

빨갱이란 말이 여순사건 이후 널리 사용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대통령의 소개처럼 일제강점기에 기원을 두고 있다. 강성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는 “빨갱이는 일제시기의 ‘아카’(赤·アカ)라는 용어에서 유래했다”며 빨강(赤)은 좁게는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가리키지만 부정적 낙인으로 기능한다고 설명했다. 강교수는 “1925년 일제는 봇물처럼 터져버린 사상악화의 흐름을 막고자 무정부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조선독립을 추구하는 민족주의 사상을 ‘위험사상’으로 처벌하는 치안유지법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일제의 치안유지법은 현행 국가보안법의 전신으로 평가받는다.

문대통령은 특히 “해방된 조국에서 일제경찰 출신이 독립운동가를 빨갱이로 몰아 고문하기도 했다”고 탄식했다. 일제강점기 항일무장 투쟁을 이끌었던 약산 김원봉선생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약산은 의열단과 조선의용대를 조직해 23번의 폭탄의거와 요인암살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였다. 일제는 백범 김구선생보다 많은 현상금을 내걸기도 했다. 그는 해방이후 귀국했다가 친일경찰 노덕술에게 심한 고문을 받고 울분을 토했다. 약산은 월북해 노동상을 지냈으며 1958년 숙청당했다. 그의 월북 때문에 남은 가족은 연좌제로 갖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약산은 3·1운동 100돌을 맞아서도 서훈대상에서 제외됐다. 보훈처 자문기구인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는 “김원봉처럼 남에서도 북에서도 사상이나 정치적 이유로 독립운동 공적을 온전히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독립유공자들을 적극 서훈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야당과 보수언론의 ‘빨갱이라서 안된다’는 주장으로 무산됐다. 독립운동가를 낙인찍는 ‘빨갱이’라는 말이 현대사의 고비마다 우리사회를 굴곡지게 한 족쇄로 작용했다는 문대통령의 말을 다시한번 떠올린다.

일제강점기 ‘탁류’로 알려진 풍자 소설가 채만식, 그는 해방직후 자신의 일제말 친일행각에 대해 ‘민족의 죄인’이라며 뼈아픈 반성을 토로한 양심적 지식인이다. 채만식은 1948년 발표한 소설 ‘도야지’에서 이렇게 꼬집었다. “추잡한 것과 부정사악한 것과 불의한 것을 싫어하고, 아름다운 것과 바르고 참된 것과 정의를 동경 추구하는 청소년들, 양심적이요 애국적인 사람들, 이런 사람을 통틀어 빨갱이라고 불렀느니라.” 문대통령의 기념사중 한 구절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마음에 그어진 38선은 이념의 적대를 지울 때 사라질 것이고 혐오와 증오를 버릴 때 내면의 광복은 완성될 것이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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