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3·1운동, 제주4·3, 여순사건의 정명(正名) 찾기

<김주언 칼럼> 3·1운동, 제주4·3, 여순사건의 정명(正名) 찾기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19.02.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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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사업본부가 '3·1 운동 100주년 우표'를 오는 28일 발행한다고 지난 18일 밝혔다.
우정사업본부가 '3·1 운동 100주년 우표'를 오는 28일 발행한다고 지난 18일 밝혔다.

불의한 일을 저질러 놓고 이를 ‘정의’라는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흔히 권력자가 저지른다. 공자는 ‘논어’에서 정치를 맡기면 무엇부터 하겠느냐는 질문에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正名)”고 대답했다.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게 되는 것(君君, 臣臣, 父父, 子子)”이라고 표현했다. 이름(名)에 부합한 실제(實)가 있어야 비로소 그 이름이 성립한다는 의미이다. 불의한 사태는 ‘불의’라는 이름을, 정의로운 사태에 대해서는 ‘정의’라는 이름을 붙이겠다는 뜻이다.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3·1운동의 바른 이름(正名)을 찾아야 한다는 논의가 일고 있다. 일부 역사학계는 그동안 “민(民)이 주도한 독립만세 시위의 역사적 상징성을 고려할 때 ‘3·1운동’ 보다는 ‘3·1혁명’으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를 밝혀왔다. 물론 3·1운동으로 정권이 바뀐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혁명으로 부르기에는 미흡하다는 반대의견도 있다. 그러나 ‘정명 찾기’ 움직임은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오를 만큼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일제는 3·1운동을 ‘폭동’ ‘소요’ ‘난동’으로 부르며 불온시했다. 반면 대한민국 임시정부 등 민족진영은 ‘3·1혁명’ 또는 ‘3·1대혁명’으로 불렀다. 3·1운동으로 이름이 굳어진 데는 해방이후 제헌국회 의원들의 주장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제헌국회에서 3·1혁명으로 표기된 헌법초안을 수정하면서 ‘3·1운동’으로 굳어졌다. ‘혁명은 정부를 전복한다는 뜻이어서 일제에 저항한다는 의미와 맞지 않다’는 이승만 등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후 2000년대 초부터 학계에서 정명 논의가 시작됐다. 항일운동이라는 ‘민족혁명’과 봉건왕조를 거부한 ‘민주주의 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반영해야 한다는 뜻이다.
‘3·1운동’을 ‘3·1혁명’으로 정명(正名)하자고 주장하는 대표적 학자는 윤경로 한성대 명예교수이다. 윤교수는 “개천절 제헌절 광복절 한글날과 함께 국경일중 하나로 기리고 있는 ‘3·1절’이라는 명칭은 역사적 의미를 담지 못하고 있다”며 다른 국경일처럼 역사적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3·1거사’가 지닌 대단한 역사성을 생각할 때 단순한 ‘운동’으로 지칭하는 것은 스스로 ‘3·1대사건’을 비하하는 것”이라며, “100주년을 맞으며 ‘3·1혁명’으로 정명(正名)하자”고 제안했다.
역사적 사건의 정명 움직임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 1894년의 농민봉기는 오랫동안 ‘동학난’으로 불렸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에는 ‘동학혁명’ 또는 ‘동학농민전쟁’으로 바뀌었다. 1960년의 4·19학생운동은 이제 ‘4월혁명’으로 불린다.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에 맞서 광주에서 일어난 민중봉기는 전두환정권 내내 ‘5·18사태’로 불렸다. 이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란 공식명칭을 얻었다. 1987년 6월 전두환정권에 맞서 전국에서 불길처럼 타오른 시민항쟁은 ‘6·10 민주화운동’으로 명명됐다. 권력의 불의한 명칭이 정명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바른 이름을 얻지 못한 채 떠돌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이 있다. 제주4·3과 여순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들 사건은 지난해 70주년을 맞아 진상규명과 함께 바른 이름 찾아주기 운동이 벌어졌으나 아직 해결되지 못했다. 제주4·3은 ‘사태’ ‘항쟁’ ‘학살’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제주 4·3평화박물관에 누워 있는 비문없는 백비에는 아직 이름이 새겨지지 않았다. 여순사건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여순반란’으로 불려왔다. 이에 대해 지역 학계에서는 ‘여순항쟁’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 사건이 정명을 얻지 못한 이유는 우리 사회가 아직도 냉전 이데올로기의 그늘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 외세에 의해 해방을 맞은 한국은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 심각한 좌우대립을 겪었다. 하지만 대다수 민중은 이념과는 무관했다. 순박한 이들은 ‘빨갱이’로 둔갑되어 무고한 희생을 치렀다. 가족이 희생당했어도 후손들은 연좌제 때문에 침묵하며 살아야 했다. 그들이 국가폭력과 역사왜곡을 바로잡고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해결의 실마리조차 풀지 못하고 있다.   
‘제주4·3’은 1948년 4월 3일 소요사태로부터 시작됐다.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2만5,000~3만명의 양민이 희생됐다. 남로당 제주도당이 군경과 서북청년단 등의 폭압에 반발해 경찰서 등을 습격하면서 시작됐다. 8월 15일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는 군대를 증파하고 계엄령을 선포하며 강경진압에 나섰다. 민간인을 집단 살상하고 중산간 마을의 95%이상을 불태웠다. 이승만 정부는 6·25전쟁 때까지 남아 있던 무장대를 진압했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발생했다. 여수 주둔 14연대가 ‘동포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며 제주4·3 진압명령을 거부하면서 촉발됐다. 당시 정부수립 두달도 안된 이승만정권은 함정까지 동원한 육해공 입체작전으로 9일만에 진압했다. 일부는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됐다. 이승만정권은 이를 계기로 국가보안법을 만들었다. 여수 순천 보성 등 전남 동부지역에서는 피바람을 몰고 왔다. 부역자 색출 명목으로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4·3은 민주화이후에야 진상규명작업이 본격화했다. 2000년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다. 보수진영의 끝없는 공격을 겪으면서도 2003년 10월 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됐다. 희생자의 넋을 위령하기 위한 기념사업도 이어졌다. 제주4·3평화공원 조성을 비롯해 유해발굴, 유적지 복원, 위령제 등도 진행됐다. 2014년에는 4월 3일이 기념일로 지정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70주년 제주4.3 추념식에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중단되거나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최근 제주4·3 생존 수형인 18명이 사실상 무죄를 인정받았다. 불법 군사재판 재심 선고공판에서 공소기각 판결을 받았다. 이들은 1948∼1949년 내란죄 등 누명을 쓰고 징역1년에서 최장 2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이번 판결은 계엄하에서 이뤄진 군사재판은 불법이며, 그로 인해 감옥에 갇힌 수형인들이 무죄임을 인정한 최초의 사법적 판단이다. 이제 제주4·3의 바른 이름을 찾는 일만 남은 셈이다. 이를 위해서는 ‘4·3 특별법’의 개정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 여순사건은 1995년 ‘여순10·19사건’이란 중립적 명칭을 얻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 여순사건 민간인희생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진화위는 주민 890명이 군인과 경찰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당했다며 희생자와 유족에게 공식 사과하도록 국가에 권고했다. 그러나 사건의 진상은 밝히지 못했다. 국가추념일로 지정되지도 않았고 대통령의 공식사과도 없었다. 게다가 보수진영에서는 아직도 ‘남한적화기도 무장반란폭동’이란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일부 보수단체는 수차례 소송을 제기하고 이념공세를 퍼붓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3·1운동을 ‘3·1혁명’으로 명칭을 바꾸는 문제를 검토해볼 것이라고 말했다. 자랑스러운 역사만이 바른 이름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처럼 자랑스러운 역사든 부끄러운 역사든,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밝히고 정리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개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자랑스러운 3·1운동이 제 이름을 찾고 제주4·3과 여순사건도 바른 이름을 얻어야 할 때가 되었다. 한반도의 평화와 상생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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