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5월 광주’ 모욕하는 망동을 뿌리뽑으려면

<김주언 칼럼> ‘5월 광주’ 모욕하는 망동을 뿌리뽑으려면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19.02.1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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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주최 '5.18 망언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 토론회가 1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주최 '5.18 망언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 토론회가 1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1980년 ‘5월 광주’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많은 국민은 해마다 5월만 되면 광주 망월동 묘역을 찾아 영령들에게 머리를 조아린다. 영령들의 민주화에 대한 염원은 1987년 6·10시민항쟁의 원천이었다.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화를 이뤄낸 원동력이기도 했다. 2년전 광화문광장을 벌겋게 물들였던 촛불의 물결에도 영령들의 혼이 깃들어 있다. 그런데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사실을 왜곡하고 영령들을 모독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빚어졌다. 그것도 민의의 전당으로 불리는 국회에서 일부 의원들이 주도했다니 믿기 어렵다. 
아직도 광주학살의 원흉이나 헬기 기총사격 등 정확한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가해자들은  시퍼렇게 살아 있고 자신들의 가해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쏟아낸다. 전두환 회고록이나 ‘이순자 망언’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국회는 5·18진상규명특별법을 개정했다. 이번 망언사태는 특별법에 따른 진상규명위원 선임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5·18당시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극우인사 지만원씨의 위원 선임을 둘러싼 자유한국당 안의 내홍 때문이다. 어찌됐든 5·18민주화운동을 부정하려는 자유한국당의 꼼수가 의원들의 망발로 세상에 터져 나온 셈이다.
한국당의 ‘망언 3인방’으로 일컬어지는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의원의 망발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5·18 광주폭동”(이종명)이나 “5·18 유공자라는 괴물집단”(김순례)과 같은 폭언은 한국당이 전두환 집단의 후예임을 증명해준다. ‘5·18은 폭도들의 난동’이라는 전두환의 주장이 한국당의 DNA에 새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뒤늦게 사과하고 자신을 포함해 3명을 당 중앙윤리위원회에 회부했다. 대국민 사과에 진정성이 얼마나 담겨 있는지는 윤리위의 제재수위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망언 3인방’의 발언으로 피해를 본 의원들은 명예훼손죄와 모욕죄로 이들과 지만원씨를 고소할 방침이다. 5·18유공자인 민주당 설훈의원과 평화당 최경환의원이 주인공이다. 이와 별도로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세 의원을 국회 윤리특위에 제소했다. 5·18관련단체들도 국회에서 이들의 제명을 촉구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는 이들의 제명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의 망언은 광주시민만이 아닌 한국인 모두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사안이 아니다.
김진태 의원이 주도하여 개최한 ‘5·18진상규명 공청회’는 얼토당토않은 지만원씨의 ‘북한군 개입설’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망언 3인방이 여과없이 쏟아낸 폭언은 이를 반증한다. 이를 둘러싼 한국당 지도부의 역사인식은 치졸하기 그지없다. 김 위원장은 사과 전에는 “보수정당 안에는 여러 스펙트럼과 견해차가 있을 수 있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존재할 수 있으나 정치권이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조장하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대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날조된 의견을 토대로 견해차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것인가. “유태인을 학살한 독일의 나치만행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단 말이냐”는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의 지적이 설득력을 얻는다. “망언은 망언일 뿐, 역사왜곡은 결코 다양한 해석이 될 수 없다”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비판도 그렇다. 우리가 일본이 일제강점기에 벌어진 일본군 성노예 만행을 인정하지 않는 역사왜곡 발언을 ‘다양한 해석’이나 ‘견해차’로 부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북한군 개입설’은 한국당이 정권을 잡았던 박근혜정부에서 국방부와 국무총리 등이 수차례 “사실이 아니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내용이다. 당시 국방부는 광주시에 공문을 보내 “5·18 북한군 개입은 사실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3년 정홍원 국무총리도 국회 대정부질문에 서 수차례 5·18 북한군 개입설을 부정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자신들이 탄생시킨 박근혜 정부의 공식발표에도 불구하고 6년만에 이를 뒤집는 황당한 공청회를 연 셈이다. 일부 한국당 의원들은 과거 파시즘의 아름답던 추억이 그토록 그리웠던 것일까.
그럼에도 지만원씨는 그칠 줄을 모른다. 지씨가 5·18왜곡으로 민형사상 재판을 벌였거나 진행중인 재판은 적어도 6건에 달한다. 지씨는 2002년 일간지에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광고를 실어 5·18재단 이사장 등으로부터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지씨는 구속상태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이듬해 1심 재판부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면서 풀려났다. 지씨는 또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일성과 짜고 북한 특수군을 광주로 보냈다’는 등의 허위주장을 펼친 혐의로 2013년에도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 판단을 받았다.
그러나 2012년 12월에는 무죄확정 판결을 받았다. 2011년 1월 수원지법 안양지원은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비방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혐의로 기소된 지씨에 대해 무죄 판결했다.  재판부는 지씨가 5·18민주화운동을 왜곡·비방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구체적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 “5·18민주화운동은 법적 역사적 평가가 확립된 상태로 지씨 게시글을 통해 5·18 관련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면죄부를 줬다. 이듬해 대법원에서 무죄로 확정된 것이다.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5·18을 폄훼·왜곡하는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씨의 무죄확정 판례로 방송과 인터넷에서 5·18을 비하·왜곡해도 형사처벌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와 달리 유럽 일부 국가는 홀로코스트를 부인하거나 나치범죄를 옹호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하다. 독일은 1985년 형법 제130조 3항에 ‘홀로코스트 부인’을 금지하는 규정을 담았다. 프랑스도 1990년 ‘인종주의, 반유대주의 외국인 혐오 행위 처벌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나치학살 부인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홀로코스트 부인행위를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임할 경우 희생자와 가족의 존엄성이 훼손되고 소수자를 상대로 한 범죄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이러한 법률을 시행한다. 홀로코스트가 반인륜 범죄라는 점도 나치범죄 옹호를 단호히 처벌하는 이유이다. 특히 독일은 형법 86조에 나치를 찬양하거나 나치식 거수경례 및 복장을 착용하는 것마저 처벌하는 조항을 법으로 규정해 놓았다. 나치상징 깃발과 슬로건을 사용할 경우 3개월이상 5년이하의 징역으로 엄벌에 처한다. 
국내에서도 역사왜곡 행위를 처벌하는 법안이 몇차례 발의됐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민주주의 역사를 왜곡·부정하며 범죄적 망언을 서슴지 않는 세력이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엄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광온의원은 지난해 8월 5·18을 왜곡·비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7년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오욕과 반동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는 길을 반드시 찾아내야 할 때이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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