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혁명 100주년 특집] 항일의 섬 소안도의 삶과 풍경

[3.1혁명 100주년 특집] 항일의 섬 소안도의 삶과 풍경

  • 기자명 박상건 기자
  • 입력 2019.02.12 07:10
  • 수정 2019.04.30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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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건 시인의 섬과 등대여행] 23 전남 소안도를 가다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건 기자] 등대는 밤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의 안전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주로 위험한 해안선, 급류와 암초, 항구와 방파제, 외딴섬 등에 세워진다. 등대는 일본이 1876년 병자수호조약을 빌미로 우리나라 개항과 해안측량, 항구에 거주한 일본인을 위해 설치하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은 청일전쟁 때 우리 땅으로 전쟁 물자를 실어 나르던 중 조난사고가 잇따르자 우리 측에 등대 설치를 강요했다. 우리 국민들 노동력을 착취해 강압적으로 등대를 세우면서 섬 주민들은 격분했고 마침내 등대를 습격하는 등 항일운동이 일어났다. 본지는 ‘3․1혁명 100주년’을 맞아 항일운동의 현장인 전남 소안도, 당사도, 당사도등대 편을 3회에 걸쳐 특집으로 연재한다.

데일리스포츠한국 특집면(2019.2.12 8면)
데일리스포츠한국 특집면(2019.2.12 8면)

"굴곡의 역사는 시퍼렇게 눈뜬 채 해안선에서 파도치고"

"일제탄압에 맞서 백의민족 기상을 드높인 섬사람들의 정신을 되새기며"

"천연기념물 상록수림의 멋 기행, 청정바다 싱싱한 해산물의 맛 기행"

맹선리 앞바다
맹선리 앞바다
해안도로 미역말리기
해안도로 미역말리기

항일의 섬, 소안도는 완도에서 남쪽으로 17.8km 지점에 있다. 소안도는 본섬 소안도와 부속섬 구도, 당사도, 횡간도 등 4개 유인도와 6개의 무인도로 이뤄져 있다. 본래 남쪽과 북쪽 2개 섬으로 이뤄져 있었으나, 너비 500m, 길이 1.3km 사주로 연결돼 하나의 섬이 되었다.

해안선 길이 65.4km인데 동쪽으로 반도처럼 돌출된 부분을 비롯해 소규모 돌출부가 발달해 바다를 향해 뻗어가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마치 시퍼렇게 눈 뜬 호랑이 발톱처럼. 동쪽과 남쪽 해안은 암석해안이고, 중앙의 사주와 북쪽 해안에는 간석지가 발달했다. 해안선을 타고 바닷길을 걷다보면 아름다운 섬 풍경에 절로 감탄한다.

구도와 양식장
구도와 양식장

완도 화흥포에서 소안도로 가는 여객선을 탄다. 여객선을 타고 가다 보면 오른편 바다 쪽에 여행자의 눈길을 끄는 섬이 있는데 횡간도. 섬 정상에는 사자 형상의 사자바위가 이방인과 조우한다. 사자바위 근처에 풍란 자생지가 있다. 옛날부터 안개가 끼면 뱃사공들은 풍란 향기로 항로를 짐작했다고 전할 정도로 풍란향이 진하다. 뱃사람들은 이 꽃향기를 맡을 줄 알아야 명사공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횡간도를 지나면 또 하나 섬 구도가 나타나고 노화도 동천항에 이른다. 그리고 종점 소안항이다. 소안도는 제주도와 소안도 사이 가없는 큰 바다에 파도가 일고 물결이 거칠었다가 소안도에 상륙하면 안심한 곳이라고 해서 소안도(所安島)라고 불렀다.

소진리 앞바다
소진리 앞바다
진산 해수욕장
진산 해수욕장

그러나 소안도는 말처럼 결코 편치 않은 역사를 가진 섬이다. 소안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때이고 이후 본격적으로 인구가 늘었다. 주민들은 임진왜란 때부터 자치방위대를 만들어 운영할 정도로 자주적이고 패기에 찬 기상으로 살아왔다. 소안사람들은 마을 사람 중에서 감옥에 가면 감옥에서 고생하는 사람을 생각해서 추운 겨울에도 이불을 덮지 않고 잤다. 그렇게 일제 때 투옥과 순직의 주민들이 늘어나면서 ‘항일의 섬’으로 불리게 됐다.

미역채취작업
미역채취작업

소안도는 소안항에서 일곱 굽이의 해안도로를 따라 섬으로 들어가는 데 제일 먼저 마주하는 조형물이 비자리 항일운동기념탑이다. 일본으로부터 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소안도 주민들이 1990년에 성금을 모아 만든 것이다. 이후 국책사업으로 항일운동 성지 복원사업과 공원으로 거듭나 청소년 역사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탑은 검은 돌과 하얀 돌로 어우러진 높이 8m, 폭 4m의 크기이다. 검은 돌은 일제탄압, 햐얀돌은 백의민족을 상징한다. 세 갈래로 솟아오른 탑은 일본에 대한 강렬한 저항을 상징한다.

항일운동기념탑
항일운동기념탑

소안도는 2019년 2월 현재 15개 행정마을에 2,735명이 사는데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한다. 땅에서 쌀, 보리, 콩, 고구마 등 농산물을 재배하고 산자락에서는 파인애플, 귤, 고추 등을 생산한다. 바다에서는 멸치, 민어, 방어, 도미, 가오리, 고등어 등을 잡는다. 어족이 풍부해 바다낚시터로도 유명하다. 청정해역에서 굴, 전복, 미역 양식이 활발해 일찍이 높은 소득을 올리는 섬으로 알려졌다.

소안도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완도해상지구에 해당한다. 특히 미라리 상록수림은 천연기념물 339호, 맹선리 상록수림은 천연기념물 340호이다. 상록수림은 해변경관이 뛰어나고 울창한 산림으로 우거졌다. 갯돌해변으로 불리는 미라리 상록수림은 소안도 명소 중 명소이다. 1km의 백사장까지 가슴 시원하게 펼쳐진다. 500m에 이르는 상록수림은 방풍림 역할과 섬의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소진리 고갯마루
소진리 고갯마루

소안도 사람들은 고기잡이를 떠난 남편과 만선, 무사귀환을 나무에 기원하는 풍습이 전승되고 있다. 설날 새벽 용왕님께 제물과 음식을 차려놓고 제를 지낸다.

소안도에는 미라팔경이 있다. 미라리 해안에서 바라볼 때 빼어난 자연 경관을 말한다. ‘학산귀운’은 가학산에 머무는 구름을, ‘대동장천’은 마을 뒷산에 흐르는 맑은 시냇물, ‘미포귀법’은 미라포구로 들어오는 범선의 장관, ‘부아강월’은 마을 앞 아부산에 떠오르는 밝은 달, ‘전방가림’은 미라리 상록수림의 아름다움, ‘용담쾌혈’은 강빈(마을 지명)에 뜬 태공들의 정담, ‘오산낙조’는 오산으로 떨어지는 붉은 해를 말한다.

진산 해변 몽돌밭
진산 해변 몽돌밭
미라리 상록수림
미라리 상록수림

면소재지에서 4km 지점에 맹선리 상록수림이 있다. 소안항에서 섬으로 들어갈 때 오른편 해안이다. 국내 최대 난대식물과 희귀수종이 자라는 바다 숲이다. 수령은 300년 전후로 추정되는 후박나무를 비롯하여 21종 245그루 상록수가 자란다. 바람이 많은 섬인 탓에 주민들은 방풍 목적으로 보호해왔고 소안도의 상징적 이미지를 심어왔다. 선박이 정박하기에 매우 좋은 입지조건으로 자연 정박시설물을 갖추고 있다.

소진리 고갯마루
소진리 고갯마루
미역채취작업
미역채취작업

가볼 만한 해수욕장으로는 과목해수욕장, 소강나루해수욕장, 진산리해수욕장, 부상리해수욕장 등이 있다. 비자리 패총은 문화재이고, 낚시꾼들이 자주 찾는 섬답게 바다에는 밀물 때 잠겼다가 물이 나갈 즈음 수면 위로 보이는 여에 대한 전설이 전한다. 각시여 전설과 도둑바위 설화 등이 그것이다. 걷기코스로는 산길을 중심으로 가학산 등산로 입구→맹선재→팔각정→데크계단→수원지삼거리→가학산 정상→팔각정→잔디밭 쉼터(파고라)→운동장약수터(군도 11호선), 또는 역순 구간이다.

배편 문의 : 화흥포 매표소(061-555-1010) 소안도 매표소(061-553-8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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