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민 칼럼> 스포츠계 성폭력, 이번에는 반드시 근절해야

<유재민 칼럼> 스포츠계 성폭력, 이번에는 반드시 근절해야

  • 기자명 유재민
  • 입력 2019.01.31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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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조재범〈사진〉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가 지난 30일 항소심에서 1심의 징역 10개월보다 높은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혹 줄이려다 혹 키웠다,
선수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조재범〈사진〉 전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가 지난 30일 항소심에서 1심의 징역 10개월보다 높은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혹 줄이려다 혹 키웠다,

2018년 1월 뉴스프로그램인 JTBC에 서지현 검사가 출연하여 검찰 내 성추행을 폭로하면서, 한국 내 미투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여러 분야의 예술인들에 대한 성폭력 피해 사실이 폭로되었고, 유명 정치인의 수행 비서가 성폭행 피해 사실을 고발하면서 미투운동은 법조계, 예술계, 정치계 등 전 분야로 확산되었다. 미투 운동의 확산은 그 동안 권력 관계로 인하여 피해 사실을 밝히기 어려웠던 여러 여성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는 지난 해 12월 17일 조재범 전 코치의 성폭력 사실을 폭로하였고, 이에 용기를 얻은 여러 피해 선수들이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하면서 ‘스포츠계’의 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심석희 선수의 폭로 이후 전직 유도선수 신유용은 고교 1학년부터 수년간 유도부 코치로부터 약 20차례 성폭행을 당했고, 심지어 코치로부터 산부인과 진료를 받도록 강요를 받았다고 폭로하기도 하였다. 이후 정구, 태권도, 테니스, 세팍타크로, 축구와 같은 다른 종목에서도 성폭력 사실을 고백하는 미투가 계속되고 있다.

계속되는 스포츠계의 성폭력 피해 폭로로 인하여 현재는 성폭력이 없었던 종목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스포츠계는 구체적인 입장 발표나 대책 마련에 대한 공식 발표도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가해자로 지목된 코치나 감독, 해당 종목의 관계자는 성폭력 사실을 몰랐으며 그러한 사실도 없다는 변명만 할 뿐이어서 전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사실 스포츠계의 성폭력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07년 발생한 우리은행 여자프로농구팀 감독의 여성선수 성추행 사건과 2008년 초 KBS 시사기획 <쌈>의 ‘2008 스포츠와 성폭력에 대한 인권보고서’보도가 있고 난 후 스포츠계의 성폭력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스포츠계의 성폭력 문제는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당시 발표되었던 여러 대책들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면서, 그 이후로 10년 동안 스포츠계의 성폭력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못한 채 은폐되었다. 그래서 일까. 얼마 전 발표된 정부의 종합 대책 및 전수 조사와 같은 사후 대책이나 처벌 위주의 대책이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아직까지 확인되지 아니한 성폭력 가해자들 역시 10년 전의 경험을 생각하며 시간만 지나가기를 기다릴지도 모른다.

스포츠계 성폭력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은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지도자와 선수는 갑을 관계에 있고, 여성 선수의 입장에서는 경기출전권에 대한 전권을 갖고 있는 감독이나 코치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더라도 신고를 하기 어렵다. 특히, 선수들은 합숙소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지내기 때문에 외부의 통제와 감시가 없는 상황에서 지도자의 권한은 극대화되고, 그 결과 지도자의 권한이 여성 선수들에 대한 성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스포츠교육이 엘리트 스포츠로 운영되면서 선수들은 어린 시절부터 운동만이 생활의 전부였기에 체계적인 교육 및 성교육을 받지 못하여 성폭력에 대한 인식과 판단력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더하여 상명하복의 문화에 익숙하고 ‘성인지 감수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코치와 감독이 극대화된 권한을 행사하면서 여성 선수들은 성폭력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위와 같이 복합적인 원인으로 발생하는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를 스포츠계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까. 변호사 관점에서 현행 ‘스포츠공정위원회 규정’중 징계 관련 규정의 전면 개정이 없는 한 스포츠계의 자정 해결은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예컨대 대한빙상경기연맹 ‘스포츠공정위원회 규정’ 제20조에서는 “징계혐의자에 대해 그 혐의를 입증할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에만 징계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제22조 제4항에서는 “객관적인 증빙 등으로 비추어 볼 때 조사를 진행할 실익이 없다고 인정할 때에는 조사를 하지 아니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합숙 생활을 하면서 어린 시절부터 운동만 한 여성 선수들이 절대 권력이 있는 체육 지도자로부터 성폭력을 당했을 때 이를 입증할 객관적이고 충분한 증거를 확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동료 선수들의 진술을 확보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 결국 성폭력에 대한 입증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처벌은 불가능할 것이고, 문제가 되었던 스포츠 지도자는 시간이 지난 뒤 조용히 돌아올 것이다.

스포츠를 사랑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대책 방안대로 실행되어 성폭력 범죄가 근절되기를 희망한다. 다만, 사후적인 처벌과 일벌백계를 통한 범죄 예방과 성폭력 예방을 위한 선수들과 지도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엘리트 스포츠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한 여성 선수들은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체육 지도자 역시 엘리트 스포츠 교육을 받으면서 선수 생활 후 지도자로 성장하였기 때문에 성인지 감수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성폭력에 대한 범죄 인식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스포츠가 발달한 독일에서는 스포츠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성폭력 방지를 위한 교육을 받아야 하고, 엄격한 절차 하에 지도자를 선발한다. 일본에서도 공인스포츠지도자 양성을 위하여 교육과목으로 스포츠 폭력, 체벌, 성폭력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한다. 현재 한국의 스포츠 지도자 특히 여성 선수를 지도하는 스포츠 지도자는 어떤 교육을 받았는가.

미투 운동의 확산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남자들의 남성중심적 사고와 성인지 감수성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스포츠계의 미투 운동이 한국 스포츠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스포츠계 성폭력을 근절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유재민(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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