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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언 칼럼> 성차별 표현과 젠더 감수성
  • 김주언 논설주간 ysk7474@daum.net
  • 승인 2019.01.31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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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유모차를 끌 수 없나?” 그래서 성차별적 언어 대신 아이를 중심에 두는 ‘유아차’로 바꾸자는 제안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새해에도 미투운동이 줄을 잇고 있다. 지난해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운동은 정치권과 문화계로 확산된 이후 다소 주춤했다. 학교에서 교사들의 성희롱이 불거져 나와 ‘스쿨미투’에 불이 붙었다. 새해 들어서는 심석희 선수의 폭로 이후 스포츠계로 번지고 있다. 그러나 재판과정에서 기소된 남성들이 합당한 처벌을 받을지는 미지수이다. 지난해 1심에서 안희정씨에게 무죄판결이 내려지고 여성에게는 가혹한 판결이 내려지면서 성차별 논란도 불이 붙었다. 여성들은 혜화역 시위 등으로 우리사회의 가부장적 질서에 맞섰다.

한국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페미니즘 열풍은 소설 ‘82년생 김지영’과 떼어놓을 수 없다. 이 소설은 100만부를 돌파할 만큼 페미니즘의 대중화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됐다. 2016년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 이후 차별과 폭력에 눈뜨기 시작한 여성들은 열광했다. 그해 출간된 이 소설은 굵직굵직한 젠더이슈와 함께 호흡해왔다. 고 노회찬의원 등이 이 책을 추천하면서 정치적 의제로도 떠올랐다. 그러나 가수 아이린이 ‘82년생 김지영’을 읽는다는 이유로, 배우 정유미씨가 영화에서 주연을 맡는다는 이유로 비난과 악플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사회는 아직도 성평등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남혐’(남성혐오)과 ‘여혐’(여성혐오)이 난무하고 이들 간의 다툼이 미디어를 장식하기도 한다. 새로운 시대, 성평등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사회는 아직도 젠더감수성이 부족하다. 사회 곳곳에서 성평등을 외치고 있지만 일상생활 속 성차별은 여전히 심각하다.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언어 속 성차별 언어가 이를 반증한다. 오랜 가부장적 제도 아래 뿌리깊게 내려온 성차별적 구조와 문화는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투운동을 시작으로 사회 곳곳에 뿌리깊게 박힌 성차별 문화를 개선하자는 움직임이 크게 일어나고 있다. 오랜 금기를 깨고 안경을 착용한 여성 앵커도 등장했다. 일부 항공사는 승무원들의 안경 착용을 허용했다. 이는 사회 전반에서 강요된 아름다움을 거부하는 ‘탈코르셋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와 함께 성차별적 인식이 그대로 담겨있는 일상언어를 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무심코 사용하는 성차별 언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유래한 남성중심의 성차별 언어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설날 연휴에 흩어졌던 가족이 한데 모이면 호칭을 둘러싼 논란이 일어나기도 있다. 왜 남편의 동생은 ‘도련님’ ‘아가씨’로 높여 부르는 반면, 아내의 동생은 ‘처남’ ‘처제’로 낮춰 부르냐는 의문이 대표적이다. 남편 집안은 시댁으로 부르고, 아내 집안은 처가로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여성가족부는 성차별 가족 호칭을 바로잡기 위해 설문조사와 공청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를 토대로 국립국어원의 대체용어를 홍보해나갈 방침이다.

성별 고정관념을 떠올리는 속담이나 표현도 많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 ‘여자가 울면 3년간 재수가 없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 ‘여자 목소리가 담장을 넘으면 안 된다’ 등의 속담에는 지독한 성차별이 담겨 있다. 운전을 잘 못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김여사’와 ‘김치녀’(금전적으로 남성에게 의존하려는 여성), ‘된장녀’(분수에 넘치게 사치하는 여성) 등도 성평등을 해치는 표현이다. ‘남자다워야 한다’ ‘여자다워야 한다’처럼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표현도 있다.

성별 고정관념이 반영된 수식어도 있다. 예컨대 여학생에게 ‘조신한’ ‘예쁜’ ‘얌전한’, 남학생에게 ‘듬직한’ ‘멋진’ ‘대범한’ 등의 수식어를 붙이는 것이다. 학교에서 겪는 성차별 말과 행동도 많다. ‘여자는 공부 못해도 얼굴만 예쁘면 된다’ ‘여학생은 글씨를 잘 써야 하고, 남학생은 못 써도 된다’ ‘남자애가 먹는 게 그게 뭐니? 여자애처럼’ 등이다. 교과과정에도 문제가 있다. 올해 1학기 모 초등학교 2학년 과정에서 나온 시험문제 ‘저녁준비, 장보기, 빨래하기, 청소하기 등의 일은 주로 누가하는 일인가요?’(정답 : 엄마)가 대표적이다.

남성을 차별하는 언어도 있다. ‘남자가 그런 것도 못해?’ ‘남자는 우는 것이 아니다’. 무심코 내뱉는 말이 남성에게는 상처를 줄 수 있고 차별이 될 수 있다. ‘첫’이라는 의미로 ‘처녀’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성차별이다. “총각은 처녀작을 만들 수 없나?”는 질문이 나온다. 남성에게 육아휴직을 권하는 사회에서 나오는 의문도 있다. ‘유모차’가 그렇다. “아빠는 유모차를 끌 수 없나?” 그래서 아이를 중심에 두는 ‘유아차’로 바꾸자는 제안이 설득력을 얻는다.

‘여의사’나 ‘여류작가’ 등 직업에 성별 구분을 두어 부르는 관행도 문제이다. 언론에도 흔히 등장한다. 여기자 여직원 여교수 여검사 여의사 여비서 여배우 여군 여경 등 직업을 가진 여성에게만 ‘여’라는 성별을 붙이는 것이다. 이는 여성 차별적이고 ‘남성이 표준’이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는 차별적 표현을 없애기 위해 표기방식 개선에 나섰다. 한 방송사는 ‘저출산’이 인구문제의 원인을 여성에 맞추는 성차별적 용어로 보고 ‘저출생’으로 바꾸기도 했다.

성폭력 재판에서 판사들이 쓰는 관용적 표현도 문제다. ‘이 사건으로 피해자는 평생 씻을 수 없는 충격과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피해여성이 심한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판결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현이다. 한 판사는 법률전문지에 ‘낡은 정조관념에 기반을 둔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트라우마를 쉽게 극복하기 어렵더라도 그것은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한’ 또는 ‘상당한 기간 동안’, ‘치유하기 어려운’ 또는 ‘잊기 어려운’ 고통이나 상처이지, 평생 씻을 수 없는 오점은 아니다.”

성차별 용어를 바꾸자는 논의는 10여년 전에도 나왔다. 2006년에는 한국여성민우회가 가족 내 평등한 호칭문화를 도입하자는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대중의 관심이 부족하고 실천의지도 높지 않아 흐지부지됐다. 이제는 다르다. 성평등에 대한 관심을 넘어 성차별 언어를 없애는 것이 성평등 사회의 젠더감수성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설날 연휴 가족이 한 데 모인 자리에서 호칭 등 성차별 표현을 바꾸는 방안도 생각해보자.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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