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재원 칼럼> 2편의 같은 제목 영화 '국가의 탄생'이 던지는 질문

<지재원 칼럼> 2편의 같은 제목 영화 '국가의 탄생'이 던지는 질문

  • 기자명 지재원
  • 입력 2019.01.29 07:10
  • 수정 2019.01.30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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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개봉한 영화 '국가의 탄생'
2016년 개봉한 영화 '국가의 탄생'

지난 연말 영화채널 CGV에서 <국가의 탄생>을 방영해 한때 포털사이트 실검 1위에 오르는 등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흑인 배우 네이트 파커의 감독 데뷔작인 이 영화는 1831년 미국에서 실제 일어난 흑인 반란 사건을 소재로 삼은 작품이다. 네이트 파커는 제작 극본 감독에 주인공 넷 터너역까지 1인 4역을 맡아 더욱 주목을 끌었다.

2016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면서 심사위원대상과 관객상을 동시에 수상, 평단과 관객을 모두 사로잡은 작품으로 그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의 오픈시네마로 초청되어 한국 영화팬들에게도 기대를 모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네이트 파커가 대학시절 강간혐의로 기소되었다는 사실이 폭로되고, 강간당했다고 고발한 여성이 2012년 자살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중들로부터 외면을 받아 흥행에는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채널 CGV가 이 영화를 소개함으로써 영화 매니아는 물론 일반 관객들도 <국가의 탄생>을 다시 접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1831년 미국 버지니아주 사우스햄턴을 배경으로 한, 넷 터너라는 흑인 노예에 관한 실화이다. 자금 압박을 받고 있던 노예 주인 사무엘 터너는, 글을 읽고 쓸줄 아는 노예이자 전도사인 넷 터너를 이용해 통제되지 않는 노예들을 순화시키는 한편 돈도 번다.

이때 넷 터너는 이곳저곳 다니며 설교를 하는 동안 동료 노예들에게 계속되는 잔혹행위와 가축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참상을 지켜보면서, 결국엔 자유를 위한 희망을 꿈꾸며 봉기를 일으킨다. 무기라고는 농기구가 전부인 이들의 저항이 소총으로 무장한 정부군을 이겨낼 리 만무하고, 체포된 넷 터너는 교수대에서 “군중에게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없느냐”는 질문에 “…(죽음을 맞을) 준비됐다”는 짤막한 말만 남기고 이승에서 사라진다.

평범한 110분짜리 시대극에 그칠 수도 있던 이 영화가 한번 더 주목을 받는 것은 영화 제목 때문이다.

<국가의 탄생>은 데이비드 그리피스 감독이 1915년에 내놓은 흑백 무성영화로, 상영시간이 3시간이 넘는 대작이다.

그러니까 영화 <국가의 탄생>은 1915년판과 2016년판, 2개가 있는 것이다.

<2016 국가의 탄생>은 미국 최초의 흑인 봉기를 다룬 것이긴 하나, 그것이 ‘국가의 탄생’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영화를 보고나서도 얼른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에 반해 <1915 국가의 탄생>은 총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에서 남북전쟁을 다루고, 2부에서는 ‘해방된’ 흑인들의 난동을 KKK단이 진압함으로써 비로소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게 된다는, 말 그대로 ‘국가의 탄생’을 그리고 있다.

<1915 국가의 탄생>은 토마스 딕슨의 소설 <클랜스맨>을 원작으로 제작된 영화다. 소설의 부제가 ‘KKK단의 역사적 로망(A Historical Romance of Ku Klux Klan)’인데서 알 수 있듯이 흑인들에게 린치를 가하고 폭력을 자행한 KKK단을 미화한 소설이다.

남북전쟁과 흑인노예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므로 수많은 흑인들이 등장하는데, 흑인 중에서도 비중있는 역할을 맡은 배우들은 얼굴을 검게 분장한 백인들에게 맡겨 이 또한 비난의 요소가 되었다.

중간에 휴식시간이 있다고는 하지만, 상황설명과 대사가 자막으로 처리되는 흑백 무성영화를 3시간 이상 상영하는 것은 당시로서 매우 희귀한 사례다.

<1915 국가의 탄생>이 기록한 희귀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당시 평균 영화 관람료가 5~10센트였는데 이 영화는 이보다 20~40배 많은 2달러였다. 요즘 미국의 평균 영화 관람료가 10달러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200~400달러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일 매진을 기록하여 개봉 3년안에 벌어들인 수익이 최소 1300만달러, 최대 5천만달러로 평가되었다고 하니 상상을 초월하는 흥행대박이었다.

애초에 그리피스 감독이 책정한 제작비는, 당시 영화제작 평균비용(3만달러)을 약간 상회하는 4만달러였다. 링컨대통령이 연극을 보던 중 암살당한 장면을 재현할 때는 피격 순간의 연극대사도 똑같이 맞췄을 정도로 철저한 고증과, 우드로 윌슨 대통령까지 초청한 홍보비용 등을 포함해 총 제작비가 11만2천달러로 급증했지만 워낙 흥행이 대성공을 거둬 그리피스 감독은 물론 원작자인 토마스 딕슨까지 돈방석에 앉았다.

클로즈업과 플래시백 촬영기법, 교차편집 기법 등 영화의 기술적인 면에서도 처음 선보인 기법들이 많아서 세계 영화사에 남는 기념비적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그리피스 감독 또한 ‘현대 영화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

만약 이 영화가 당시로서도 극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인종차별 내용을 담고 있지 않았더라면 <1915 국가의 탄생>은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불멸의 영화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1915 국가의 탄생>이, 무지하고 미개한 ‘해방된’ 흑인들을 KKK단이 제압함으로써 비로소 새로운 국가가 탄생한다고 그린 반면 <2016 국가의 탄생>은 똑같은 제목을 차용해, 흑인들이 노예에서 하나의 인간으로 돌아오는 것이 진정한 국가의 탄생 아니냐고 묻는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 재임시절(2009.1~2017.1)엔 유독 ‘흑인 인권’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 많이 나왔다.

1840년대에 뉴욕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 생활하던 흑인이 납치돼 12년동안 노예로 산 실화를 영화로 한 <노예 12년>(2014), 미국에서 실질적으로 노예해방이 확정된 수정헌법 성립시기의 비화를 다룬 <링컨>(2012), 노예 해방 선언 100년이 지난 1960년대까지도 유지되던 흑인 하녀들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헬프>(2011), 1952년부터 1986년까지 34년간 8명의 대통령을 수발든 백악관 집사 버틀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버틀러 : 대통령의 집사>(2013)들은 법적으론 노예에서 해방됐어도 여전히 백인에게 천대받고 있는 흑인들의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영화들이다.

그러고 보니 오바마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에 <국가의 탄생>이 다시 나온 것이 우연은 아닌 것같다.

지재원(본사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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