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경 칼럼> 탈진실 시대의 사실(Fact): 실제사실, 가짜사실, 그리고 대체사실

<한은경 칼럼> 탈진실 시대의 사실(Fact): 실제사실, 가짜사실, 그리고 대체사실

  • 기자명 한은경
  • 입력 2019.01.17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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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가짜뉴스의 조직적 유통에 단호히 대처해야.” 얼핏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언론과의 전쟁이라도 선언한 줄 알았다. ‘단호히 대처’라는 말은 언제나 ‘전쟁’이란 말로 새겨들으며 살아온 탓일까.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일초도 걸리지 않았다. “문대통령, 새해 첫 국무회의: 가짜뉴스, 초기 대응 속도가 매우 중요." 아하, 가짜뉴스와의 전쟁, ‘초전박살’이 매우 중요, 결국 이런 뜻으로 되씹어 달라는 거지? ‘평화 레토릭’을 입에 달고 사는 한국의 문대통령이 새해벽두부터 전쟁용어로 뒤범벅된 레토릭을 던졌다. 그리고 대개의 한국 언론은 문대통령의 전쟁선포를 적극 지지하는 모양새이다. 문대통령의 가짜뉴스와의 전쟁은 자기들 제도권 언론과는 아무 상관없고 비제도권의 유튜브 혹은 딴 세상 일로 여긴 탓에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가짜뉴스의 발원지는 대부분 특정 정책을 구성하고 시행하는 정부기구나 그 부속 기관, 혹은 소위 학자나 전문 연구원들이다. 그리고 이들이 생산한 대체사실, 즉 가짜뉴스의 씨앗을 퍼뜨리는 일등 공신은 제도권 언론 매체이다. 나머지 비제도권의 무수한 유튜버, SNS는 말 그대로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일 뿐이다. 이렇게 말하면 상식에 어긋나는 말이라고 발끈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현상을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게 오히려 매우 잘못된 상식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마치 실제 발생한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고 경험하며 살아가는 줄 알고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현대인들은 자기 주변의 일상사 및 사회생활 외에는 실제사실을 그대로 경험할 수 없는 복잡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불과 100호 혹은 200호가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살았던 촌락 공동체, 종족부락 시대라면 사실(fact)은 언제나 우리 눈앞에, 혹은 이웃의 눈앞에서 직접적이고 실제적으로 발생하고 전개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은 싫든 좋든 지구 전체공간이다. 때로는 달과 화성의 공간까지 우리의 생활공간으로 융합되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실의 거의 많은 부분은 실제사실 그대로가 아니라 지구 반대편에서 발생한 가공된 그리고 누군가의 해석을 거친 대체사실들이다. 더군다나 내 한 몸 살아가기에도 바쁜 우리는 실제사실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다. 오히려 누군가가 짧고 압축적인 한마디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우리에게 전해주기를 바란다. 실제사실보다 대체사실이 오히려 진짜사실로 통하는 세상, 점점 더 탈진실 정치, 탈진실 사회, 그리고 탈진실 시대가 가속화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체사실의 생산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겠지만, 대체사실의 생산이 바로 가짜뉴스의 생산으로 이어지는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는 소위 ‘낙동강 흑두루미’기사이다. 불과 한달 전인 2018년 12월 19일자 대다수 언론은 환경부의 보도자료를 받아 “‘녹조’ 낙동강 보 열었더니... 8년 만에 흑두루미 나타났다”는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낙동강, 그 중에서도 칠곡보의 수문을 열었더니 하얀 백사장이 다시 드러나고 사라졌던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가 거기 새로 찾아왔다는 환경부발 기사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기사는 그야말로 칼로 두부 자른 듯이 명백한 가짜였다. 왜냐하면 낙동강 보 공사 이래 낙동강을 찾는 흑두루미의 행렬이 한 해라도 끊어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방송보도 자료는 인터넷에 널려 있다. 심지어 대표적인 인터넷 언론사 가운데 하나가 2017년 11월자 보도에서 2008년부터 2016년까지 낙동강을 찾은 흑두루미 개체수의 통계를 이미 자세히 보도한 바 있고, 2018년 2월에는 SBS가 낙동강을 찾는 흑두루미의 개체 수에 대한 보도를 한 바 있다. 그 통계에 따르면 2008년에 2,885마리, 2012년에 860마리, 2014년에 2,472마리, 2016년에 1,089마리가 낙동강을 찾았다고 한다. 낙동강 칠곡보가 완공된 2012년 6월을 기준으로 보면 철새도래가 860마리에서 2,472마리로 급격히 증가하다가 2016년에는 1,089마리로 감소세를 나타낸다. 2016년에는 왜 개체수가 감소했는지 원인을 밝히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낙동강 보와 철새도래의 상관관계가 이 자료만으로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도 명확한 사실(Fact)은 낙동강을 찾는 흑두루미가 여태껏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례는 대체사실의 생산이 가짜뉴스로 이어지는 과정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사실 환경부의 보도자료는 백퍼센트 가공의 사실이라기보다는 그저 대체사실일 뿐이다. 그 당시 흑두루미가 실제로 낙동강 백사장을 찾아온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실제사실에 허위의 해석을 덧붙였다는 점이다. “4대강 보의 수문을 열었더니 사라졌던 흑두루미가 다시 찾아왔다. 즉 수문을 열어야 자연을 복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생산하기 위하여 환경부가 정부기관으로서 지켜야할 진실을 팔아먹은 셈이다. 결국 막강한 제도언론들이 구글링이라는 초간단 확인절차도 생략한 채 그 대체사실을 무조건 보도하면서 이 세상에는 가짜뉴스가 하나 더 탄생했다. 이것이 대체사실과 가짜뉴스의 생산과 그 경계를 나누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러한 사례는 무수하다. 현대인은 실제사실보다 오히려 대체사실에 묻혀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첨예한 대체사실의 생산자는 여론조사 회사이다. “날씨가 덥다, 혹은 춥다”라는 사실은 우리 피부가 온도를 감각함으로써 확인 가능한 현상이지만 여론은 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무형의 사건이다. 그러나 그러한 여론조사의 결과, 예를 들어 대통령 지지율이라는 숫자가 여론조사라는 방식으로 포장되고 실제사실인 것처럼 생산되어 우리에게 매주 전해진다. 주관적 해석을 배제하기 위하여 충분히 객관적인 조사방법을 토대로 생산된 사실이라고 여겨지지만 그것이 실제사실과 차이가 있음은 “오차범위‘라는 말로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누구나 다 한번쯤 생각해 봤겠지만, 불과 한두 여론조사 회사가 오천만 인구의 여론조사를 위하여 겨우 일천 명이라는 소규모 집단을 조사하여 그것이 실제사실이라고 내놓는다면 그것은 그저 그 회사의 자의적인 해석일 뿐이다. 만약 충분히 많은 여론조사 회사가 각자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조사한 결과라면 표본 집단이 겨우 천명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실제사실에 가까운 대체사실이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논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숙고해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요약하면, 검증되지 않은 자기해석과 대체사실의 생산이 바로 가짜뉴스의 발원지이다. 이와 같은 대체사실의 생산은 개인 영역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바로 권력과 제도권의 기관들이 가짜뉴스의 주된 생산자요 발원지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가짜뉴스에 단호히 대처하기 원한다면 대체사실의 생산에서부터 진실성 검증이 철저해야 한다. 말하자면 예로 든 환경부에서부터 진실한 대체사실을 생산해야 그것에 기초한 진짜뉴스가 풍부해진다는 말이다. 윗물에서부터 가짜 대체사실이 생산되면 가짜뉴스와 진짜뉴스의 경계가 어디인지 어느 누구도 분간할 수 없다. 역사교과서 분쟁에서부터 에너지 정책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실제사실인지 혹은 진실인지 아무 것도 확실한 것이 없다. 그런 마당에 무엇을 근거로 단호히 대처하라는 것인지 의아하다. 도가 넘는 가짜뉴스가 치유되어야 할 사회병리현상임을 인정한다면 자의적 해석에 기초한 대체사실의 생산에 대하여 건전한 상식과 전문지식을 통한 사회적 감시를 강화하는 일이 일차적으로 필요하다. 대체사실의 대표적 생산자가 정부라는 점을 잊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한은경(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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