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신재민 전 사무관을 어떻게 볼 것인가.

<김주언 칼럼> 신재민 전 사무관을 어떻게 볼 것인가.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19.01.10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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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 동영상이 공개되고 있다.
지난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 동영상이 공개되고 있다.

미국 행정학자 랠프 험멜은 “공무원은 생김새가 인간과 비슷해도 머리와 영혼이 없는 존재”라고 지적했다. 관료조직의 부조리한 관행, 비생산적 조직문화, 복지부동하는 공무원의 한계를 꼬집은 말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보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말이 바로 ‘영혼 없는 공무원’이었다. “공무원의 잘못은 없다. 모두 박근혜와 최순실의 잘못이다. 공무원은 원래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이들의 대표적 변명이다.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이 ‘영원한 정규직’ 공무원을 그만둔 이유는 이러한 공직사회 풍토가 싫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 전 사무관은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밝혔다 “바뀐 정권은 무언가 다를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바뀐 정권도 똑 같았다. KT&G 사장을 바꾸라고 지시가 내려왔고 기재부는 그에 맞추어 시행계획을 만들었다. 바뀐 정권도 왜 의사결정 방식은 바뀌지 않았을까. 공무원을 그만두고 이러한 현실을 알리고 싶었다. 이번 정권의 문제는 아니다. 매 정권 그랬다고 한다.” 그는 청와대의 일방적(?) 업무지시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이를 군말없이 따르는 공무원 사회의 ‘영혼 없는 일처리 방식’을 더욱 괴로워했던 것같다.

언제부터인가 신 전 사무관의 이런 고민은 쟁점에서 사라졌다. 내부고발자 여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초는 그가 공개한 기재부의 적자국채 발행과 KT&G사장 교체시도 논란이다. 그는 청와대의 직권남용으로 판단했지만, 기재부는 정상적 업무수행 과정이라고 반박했다. 이제는 정치권의 정쟁사안으로 번져 여야는 연일 공방을 주고받는다. 그의 제보를 내부고발로 규정할 수 있느냐를 두고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정치권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기재부의 고발이 지나치다며 고발을 철회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시민사회가 같은 의견을 보인다.

내부고발자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당사자의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 것인가에 달려 있다. 우선 적자국채 발행을 둘러싼 논란이다. 2017년 초과세수 23조원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두고 정부 내에서 다양한 의견을 내놓으며 치열하게 토론했다. 한쪽 당사자였던 신 전 사무관은 적자부채 발행에 부정적이어서 다른 의견을 수용하기 어려웠다. 자신의 양심에 따른 신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책 결정은 정부는 물론, 청와대, 여당과 협의하여 보완할 수 있는 것이다.

기재부는 2017년 11월14일 1조원 규모의 국고채 조기매입(바이백)을 하루 전에 취소했다. 신 전 사무관이 근무하던 국고국의 의견을 받아들여 바이백 취소 공지를 띄웠다. 국고채 금리가 치솟는 등 채권시장이 혼란에 빠졌으나 다행히 다음날 정상화했다. 기재부는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않기로 했으나 청와대는 발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고수했다. 청와대는 당시 금융시장 여건을 고려해 기재부의 결정을 받아 들였다. 청와대가 이견을 조정하여 최종결정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국가채무 비율을 높이려 했을까. 신 전 사무관은 적자국채 발행을 둘러싼 충돌 이유로 국가채무 비율을 조정하려는 ‘정무적 판단’을 들었다. 2017년도 국가채무 비율을 높여야 문재인정부가 기저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그러나 4조원규모의 적자국채를 추가 발행했더라도 국가채무 비율은 38.3%에서 38.5%로 0.2%포인트 높아지는 데 그친다. 더구나 바이백 1조원 취소는 국가채무 비율과 관련이 없다. 새로운 빚을 내서 기존 빚을 갚는 방식으로 잔액에는 변동이 없기 때문이다.

신 전 사무관은 청와대가 지난해 민간기업인 KT&G 사장을 바꾸려 했고, 지시를 받은 기재부가 박근혜정부 때 선임된 사장의 연임을 막으려 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재부 2차관에 보고했던 ‘KT&G관련 동향 보고’를 근거로 들었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KT&G사장 인사에 영향을 미치려거나, 청와대 지시가 있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실제로지난해 3월 열린 주총에서 사장교체 시도는 실패했다.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 중립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정부가 작심하고 사장교체에 나서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신 전 사무관을 내부고발자로 볼 수 있을까. 그는 기자회견에서 “잘못을 바로 잡고 공공의 이익을 바로잡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고 밝혔다. 공익신고자(내부고발자)를 자처한 것이다. 현행 공익신고자보호법에는 공익신고의 내용과 신고절차를 엄격히 정해 놓았다. 공익침해 행위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 등 공공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로 284개 법률의 벌칙을 열거해 놓았다. ‘청와대 외압 의혹’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한 수사기관이나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해야 하므로 ‘유튜브 폭로’는 공익신고로 볼 수 없다.

그러나 법조문만으로 공익신고자 여부를 가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 공익신고의 내용이 타당하고 이를 통해 공직사회의 부조리와 관행을 바꾼다면 내부고발자로 볼 수 있다. 시민사회는 이러한 내용과 공익신고자 보호 및 보상 등을 담은 공익신고자 보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아무튼 신 전 사무관의 행위를 공익적 내부고발로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다만 정책결정과정에서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높이 사야 한다. 이 때문에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무원직을 그만두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문제는 그의 제보를 둘러싼 정치권의 치졸한 싸움이다. 제보내용을 확인하기 보다는 인신공격과 피해자 주장을 내세워 소모적 정쟁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제보는 자유한국당의 주장처럼 “80년대 민주화운동 이후 최대 양심선언”이나 “나라살림 조작사건”으로 규정하기 어렵다. 더구나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거나 “3년차 사무관의 무모한 주장”이라는 더불어민주당의 주장도 수긍하기 어렵다. 특히 손혜원의원의 “나쁜 머리 쓰며 의인인 척 위장한다”는 비난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시민단체인 내부제보실천운동은 성명을 통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타인의 권리와 명예를 침해하지 않는 범주 안에서 자신이 체감하는 부조리와 문제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부고발은 청렴사회의 디딤돌이기 때문이다. ‘영혼없는 공무원’이 되기를 거부한 신 전 사무관의 제보는 ‘양심선언’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개인의 신념과 양심을 훼손할 수는 없다. 더구나 권력기관이 법을 동원해 양심선언을 처벌해서는 안된다. 기재부가 그에 대한 고발을 취하해야 하는 이유이다.

김주언(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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