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이정현 위법판결과 권력의 보도개입 관행 근절

<김주언 칼럼> 이정현 위법판결과 권력의 보도개입 관행 근절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18.12.20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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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 시절 KBS의 세월호 보도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무소속 이정현 의원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 시절 KBS의 세월호 보도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무소속 이정현 의원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흔히 언론과 권력의 관계는 ‘불가근불가원’으로 불린다. 너무 가까워서도 안 되지만, 너무 멀어도 안된다는 뜻이다. 정치권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론보도에 간섭해 여론을 우호적으로 조성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과거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은 아예 보도지침을 내려 언론을 통제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바뀌지 않았다. 물리적 압박만 사라졌을 뿐이다. 지난 14일 내려진 이정현의원에 대한 방송법위반 판결은 이러한 관행에 쐐기를 박을 수 있을까. 방송사 경영진의 부당한 개입도 처벌할 수 있나. 방송뿐만 아니라 신문과 인터넷 언론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이번 판결로 떠오르는 의문들이다.

“한번도 적용된 적 없는 조항으로 피고인을 처벌하는 것은 역사적 의미가 있다. 관행이란 이름으로 경각심 없이 행사돼왔던 언론에 대한 정치권력의 부당한 간섭이 더는 허용돼선 안 된다는 선언이다.” 세월호참사 관련 보도개입 혐의로 기소된 이의원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울려 퍼진 오연수판사의 단호한 목소리이다.

오판사는 이의원에게 방송법 위반으로 징역1년 집행유예2년의 판결을 내렸다. 방송편성의 독립과 자유를 보장하는 방송법이 만들어진 지 31년만에 내려진 첫 처벌이었다. 방송법 제4조2항은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를 위반하면 2년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이하의 벌금을 받도록 되어 있다.

이의원은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재직하던 2014년 4월 세월호참사 당시 김시곤 KBS보도국장에게 두차례 전화를 걸었다. 해경을 비판한 KBS보도에 고성으로 항의하고 “내용을 바꿔 달라”, “뉴스편집에서 빼 달라”고 직접 압박했다. “이런 식으로 지금 국가가 어렵고 온 나라가 어려운데 지금 그렇게 해경하고 정부를 두들겨 패야 하는 게 맞느냐.” “해경 비판은 좀 지나고 나서 해달라” “다른 것으로 대체하거나 말만 바꿔서 녹음을 다시한번 해달라.” 이의원은 심지어 “하필이면 KBS를 봤네”라며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들여 회유하기도 했다.

김국장의 이의원 녹음파일 공개과정에는 필자도 한몫했다. 김국장이 보관하고 있던 녹음파일 공개를 중개한 것이다. 2016년 열린 공개 기자회견에는 김국장 대신 필자가 참석하여 공개과정을 설명했다. 그동안 필자는 과거 보도지침 사건의 사례를 들어 김국장이 녹음파일을 공개하도록 설득해 김국장의 결심을 끌어냈다. 그래선가. 언론은 녹음파일을 ‘신보도지침’으로 명명했다.

김국장은 당시 길환영사장의 강요로 국장직에서 사퇴하면서 길사장이 수시로 보도에 개입한 사실(김시곤 비망록)을 밝혔다. 이 때문에 정직4개월의 징계를 받고 징계무효소송을 진행중이었다. 공개된 녹음파일을 근거로 세월호참사 특별위원회가 2016년 이의원을 검찰에 고발해 재판이 진행됐다. 2년여만에 비로소 1심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앞으로 항소심과 대법 판결에서 어떤 판결이 내려질지 주목된다.

이의원은 “홍보수석의 지위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 친분으로 부탁하고 사정한 것”이라며 “의견을 개진했을 뿐 방송편성에 영향을 미칠 의도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정당한 공보활동이었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재판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돼 있다는 황당한 주장도 펼쳤다. “31년이상 한번도 적용된 적 없고 의미도 애매한 법률로 기소해 현역 국회의원을 처벌하는 것은 정치적 목적에 의해 사법절차가 이용되는 것으로 유죄판단이 나올 경우 대한민국 사법제도가 후진적이라는 것을 입증하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 오판사는 강하게 질책했다. “해당조항이 만들어진 지 상당기간이 지나도록 기소와 처벌이 전무했던 이유는 이 조항을 위반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국가권력이 언제든지 쉽게 방송관계자와 접촉해 방송편성에 영향을 미쳐왔음에도 이를 관행정도로 치부한 왜곡된 인식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잘못된 행동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이 사회 시스템의 낙후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변호인 주장이야 말로 매우 정치적이고 위험한 주장이다.” 실로 명쾌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오판사는 위법 판단의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피고인은 언론자유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여전히 홍보수석 지위를 가진 사람이 방송 편성권자와 접촉해 보도내용을 바꿀 수 있다는 안이한 인식이다. 홍보수석의 요구는 보도국장 인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통령의 의사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전화내용, 어조, 말투 등에 비춰봤을 때 이의원의 전화는 의견제시가 아닌 상대방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려 한 구체적 요구에 해당한다.”

방송편성 결과가 바뀌지 않았더라도 방송편성 개입 의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조항 의미를 살폈을 때 범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오보를 정정하려 했다면 해명자료를 내는 등 정상적이고 공식적 방법을 택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일상적으로 보도내용에 개입했던 전 KBS사장들에게는 책임을 물을 수 없을까. 김시곤 비망록에는 길환영 전사장은 수시로 보도에 개입하여 기사를 수정하거나 빼도록 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김인규 전사장은 재임시절 임원회의에서 기사제목에 시비를 걸고 데스크와 국장을 나무라기도 했다. 기자들에게도 “특종한다고 까불다가 역사의 죄인이 될 수도 있다”고 협박했다.

사장이나 이사 등 방송사 경영진은 치외법권인가, 아니면 방송 편성이나 보도에 개입할 수 있도록 허용돼 있나. 방송법 제4조는 ‘누구든지’ 개입할 수 없도록 명문화해 있다. 법원의 판결을 받아야 할 부분이다. 그래야만 어떤 정권이 들어서고 어떤 사장이 되더라도 방송내용에 개입할 수 없을 것이다.

방송이 여론형성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특정권력이 방송편성과 보도내용에 개입한다면 국민의사가 왜곡되고 불신과 갈등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존립과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신문이나 인터넷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들 매체는 방송법처럼 엄격한 규제조항이 없다. 방송은 공영성이 강하지만, 신문이나 인터넷언론은 사영매체이기 때문인가.

신문법에는 방송법처럼 편집 및 보도 개입 금지와 처벌조항이 마련돼 있지 않다. 제4조에는 사업자가 ‘편집인의 자율적 편집을 보장하여야 한다’는 명문규정만 있을 뿐이다. 모호하기 이를 데 없다. 최소한의 필요조건인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것이다. 이번 기회에 신문과 인터넷언론에 대해서도 권력의 편집 및 보도 개입을 규제하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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