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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언 칼럼> 영리병원 허용과 ‘문재인 케어’의 모순
  • 김주언 논설주간 ysk7474@daum.net
  • 승인 2018.12.13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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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후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의료영리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가 기자회견을 열어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 개원 허가 취소 등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2007년 상영된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는 충격을 몰고 왔다. 미국의 한 노동자는 손가락 두 개가 잘렸지만, 의료보험에 들지 못해 한 손가락만 봉합할 수밖에 없었다.

‘화씨 911’로 유명한 마이클 무어 감독은 미국의 취약한 의료제도의 모순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미국 의료보험 미가입자는 약 5,000만명. 이윤의 극대화를 노리는 보험회사와 제약회사, 이에 유착한 정치인들의 행각을 직설적으로 폭로했다. 돈 없는 환자들은 의료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죽음으로 내몰렸다. 돈 없으면 죽어야 하는 세상이다. 무어감독은 미국사회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도발적으로 그려냈다.

미국은 여러차례 보편적 의료보험제도를 추진했으나 정계와 의료계의 반대에 부닥쳐 좌절됐다. 오바마 정부 들어 2014년에야 전국민 의료보험가입을 의무화하는 ‘오바마 케어’를 시행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직후 부자들의 의견을 수용해 의무가입 폐지를 추진중이다. 첫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부자들의 부담을 줄여 저소득자의 의료보험 혜택을 박탈한다”는 반발도 한몫했다. 국내에서 1호 영리병원 설립이 허가됐다는 소식을 듣고 ‘식코’를 떠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원희룡 제주도 지사가 5일 시민단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국 뤼디(綠地)그룹이 추진해 온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의 개설을 허가했다. 내국인 진료는 금지하고 제주를 방문한 외국인 의료관광객만을 진료대상으로 하는 조건이 붙었다. 진료과목은 성형외과, 피부과, 내과, 가정의학과 등 4개과로 한정했다. 그동안 실시해온 공론화 조사위원회의 개설불허 권고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이다. 공론화위는 그동안 설문조사와 공청회를 통해 제주도민의 여론을 수렴해왔다. 설문조사 결과 반대는 58.9%(찬성 38.9%)에 달했다.

제주지역 시민단체들은 영리병원의 허가취소와 원지사의 즉각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은
“영리병원 허용은 도민의 건강권을 자본에게 팔아먹은 것이나 다름없다”며 “무인격적 자본이 증식을 위해 의료 인력과 기회를 숨 막힐 듯이 빨아들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공공의료체계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고 의료의 질도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깔려 있다. 제주지역에 설립된 한 곳의 영리병원은 전국으로 확산돼 ‘식코 사태’가 국내에서 재현될 소지를 만든다는 뜻이다.

이러한 우려는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 병원경영이 악화할 경우 녹지국제병원은 진료대상과 진료영역의 확대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국인 진료를 거부하면 의료법 위반으로 형사고발이 이뤄질 수도 있다. 법원이 위법판단을 내리면 진료대상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제주도는 개설허가 이전에 ‘내국인도 영리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홍보했다. 녹지국제병원은 두차례나 이의를 제기했다. ‘조건부 허가’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인 셈이다. 재벌들이 외국자본과의 차별을 내세워 반발하면 영리병원의 물꼬가 트일 수도 있다.

영리병원은 수익금을 투자자가 회수하는 구조이다. 투자자가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의료의 공공성이나 보편적 서비스를 도외시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일부에선 투자자가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환자유치에 최선을 다해 의료서비스의 질이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영리병원은 의료비를 마음대로 책정할 수 있고 각종 규제에서 벗어나 있다. 따라서 영리병원이 늘어나면 의료비 인상과 의료 양극화를 불러올 수 있다. 결국 보편적 의료서비스를 근간으로 하는 공공의료체계는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시민사회도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 노동 시민사회단체는 10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행과 원희룡 지사의 퇴진을 촉구했다. 이들은 “제주 녹지국제병원 허가는 의료영리화 추진일 뿐만 아니라 공론조사 결과까지 뒤집은 민주주의 파괴 조치”라고 비판했다. 시민사회단체는 ‘영리병원설립 금지’를 공약했던 문 대통령이 영리병원 개원을 중단시키기 위한 조치를 시행하라고 요구했다. 보건복지부의 녹지국제병원 승인 철회요구도 포함됐다. 최소한의 민주절차마저 거스르고 민의를 저버린 원 지사도 도마 위에 올랐다.

시민단체들은 국회에 영리병원 설립과정의 의혹을 해소할 청문회 개최를 요구했다.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사업계획서 승인과정에 대한 청문회를 진행하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보건복지부가 제출하지 않은 영리병원 관련 자료를 국민에게 알리고, 의료공공성을 훼손하고 건강보험을 파괴하는 영리병원 철회를 위해 노력해달라는 주장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해 시민단체가 녹지국제병원에 대한 국내의료법인의 용역연구가 의료법 위반임을 제기했을 때 아무런 조사도, 제재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영리병원의 설립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중인 ‘문재인 케어’와 모순되는 점을 안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8월 “건강보험 하나로 걱정 없이 치료받고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2022년까지 국민 모두 의료비 걱정에서 자유로운 나라, 어떤 질병도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가겠다”는 각오였다. 의료비가 비싸서 가난한 서민이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실을 고쳐나가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건강보험 혜택을 넓혀 의료비 본인부담 비율을 낮추겠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위해 세부정책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선택 진료제를 폐지하고 건강보험을 1일 병실까지 확대토록 했다. 앞으로는 미용과 성형 등을 제외한 치료와 관련된 필수적 비급여 항목들은 모두 건강보험을 적용토록 할 계획이다. 또한 치매의료비를 국가가 지원하고 65세 이상 노인들의 틀니와 치과 임플란트 본인부담률을 30%로 인하한다. 특히 간병인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간호 간병 통합서비스를 10만 병상으로 확대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소득수준별로 연간 의료비의 본인부담 상한액을 정해 초과비용은 건강보험에서 지원토록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공공의료체계를 무너뜨려서는 안된다. 국내에서 영리법원이 점차 전국으로 확산되면 ‘돈 없으면 죽어야 하는’ 악몽이 불어닥칠지도 모른다. ‘미국보다 좋은 대표적 제도’로 꼽혀온 한국의 의료보험체계도 허물어질 우려도 크다. ‘문제인 케어’도 병원이나 보험사들의 반발에 부닥칠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대한의사협회는 문재인 케어에 반발해 집단휴진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한국사회가 ‘식코사회’로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는 영리병원 설립은 재고해야 한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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