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내부고발자는 청렴사회의 디딤돌

<김주언 칼럼> 내부고발자는 청렴사회의 디딤돌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18.12.06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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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종합세트’로 일컬어지는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은 국민의 분노를 샀다. 불법 음란물 유포는 물론 , 비자금 조성, 마약 남용, 직원들의 전화통화기록이나 메시지 도청 등 양회장의 범죄혐의만도 십여건에 이른다. 양회장은 웹하드 업체인 위디스크와 파일노리 등을 통해 디지털 불법영상을 대량으로 유포해 음란물의 온상역할을 했다. 동영상을 통해 공개된 그의 엽기행각은 경악스럽기조차 하다. 그러나 증거를 없애 경찰은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자칫 가려질 뻔했던 범죄행각이 드러난 것은 오로지 내부고발자의 폭로 덕분이었다.

양회장은 경찰수사를 무력화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수차례 교체하고 하드디스크의 자료를 삭제하는 등 조직적 증거인멸 작업을 진행했다. 경찰 소환조사를 받는 직원에게는 보너스를 미끼로 위증을 요구하는 등 수사방해 행위를 자행하기도 했다. 내부고발자 A씨가 양회장의 범죄사실을 고발한 이유이다. 그는 “양회장이 비밀리에 업로드조직을 운영한 사실을 확인했지만 내부개혁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양회장의 허위진술 강요로 내부고발 없이는 수사를 통해서도 진실이 밝혀지기 어렵겠다고 우려했다”는 것이다.

내부고발은 이처럼 청렴사회의 디딤돌 역할을 해왔다. 2년전 촛불혁명을 불러온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도 내부고발자들의 폭로로 실마리를 찾았다. 현재까지 우리사회를 흔들었던 굵직굵직한 사건은 이들의 용기가 뒷받침됐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을 비롯하여 영화 ‘도가니’ 광주인화학교 성폭력 사건, 국정원 불법 댓글사건, 이명박정권 청와대와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세계 7대경관 선정 KT의 국제전화 부정청구 사건, 윤일병 폭행사망사건. 이들 사건은 내부고발로 비로소 진실의 문을 열 수 있었다.

내부고발자는 영어로 ‘whistle blower’이다. 경찰관이 호루라기를 불어 범죄를 경계하고 위험을 경고하는 데서 유래했다. 내부고발은 조직구성원이 조직안에서 발생한 불법 부정부패 비리 예산낭비 등을 감독·수사기관이나 언론 등에 알리는 행위다. 1990년대 이전만 해도 ‘양심선언’으로 불렸다. 1990년대초에는 감사원 감사비리, 군 부정선거, 보안사 민간인사찰 등 권력과 관련된 불법비리가 주대상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사학재단 비리 등 생활과 밀접한 분야로 확대됐다.

내부고발은 제도나 시스템의 개선을 가져왔다. 이문옥 전 감사관의 감사비리 고발이 부패방지법 제정의 계기가 된 것이 대표적이다. 군부재자투표 영외투표 개정, ‘도가니법’ 제정도 중요한 성과이다. 1990년이후 내부고발 102건중 진상규명이나 제도개선을 이끈 경우는 62건(60.8%)이라는 추적조사도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2002~2016)에 따르면 내부고발에 혐의 적발률은 74.2%에 달했다. 게다가 추징·환수 대상액이 6,250억여원으로 전체사건 대상액 7,610억여원의 82.1%를 차지하고 있다. 내부고발의 효용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내부고발자들은 하나같이 어려움에 직면했다. 조직으로부터는 배신자로 낙인찍혀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게다가 구속 파면 해임 등으로 고난의 길에 들어설 수밖에 없다. 가정은 파탄나고 정신적 불안증세에 시달리다가 폐인으로 전락하는 경우마저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국내에서도 부패방지법과 공익신고자보호법이 제정돼 시행중이다. 공직자의 부패행위를 고발한 신고자에 대해 비밀보장 신분보장 신변보호 책임감면 등과 보상 및 포상을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포상을 받거나 신분이 보장된 사례도 많다. 법률도 여러차례 강화했다.

그러나 아직도 보완해야 할 점이 많다. 무엇보다도 신고대상 범위의 확대가 시급하다. 현재 신고대상이 279개 법률 위반사항으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공직자의 부당한 직무처리와 예산낭비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박근혜정권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는 심각한 위헌 사례이지만 부패행위로 규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신고자는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였다. 배임 횡령 등 기업비리도 공익신고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고대상을 열거주의가 아닌 포괄주의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내부고발자의 신분보장과 실질적 보상도 미흡하다. 현행법은 반드시 기명신고를 의무화하고 있어 신분이 노출될 우려가 크다. 따라서 신고자가 주민등록번호 등 인적사항을 밝히지 않고 변호사나 시민단체 등이 대리 신고하는 제도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부분의 내부고발자는 생계난에 직면해 있다. 보상금이나 포상금은 일시적일 뿐더러 충분하지도 않다. 실질적 보상이 이뤄지고 재취업이 가능하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벌금 수납액 등으로 공익신고자 지원기금을 설치하는 것도 방안 중의 하나이다.

내부고발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많이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밀고자’라는 부정적 인식은 없어지지 않았다. “너만 깨끗하면 다냐”는 비아냥과 사시는 아직도 상존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내부고발자는 좌절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범죄에 함께 가담했던 내부자이기 때문에 형사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도 어렵다. 국정농단 사건의 내부고발자 고영태씨가 감옥에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양진호사건의 내부고발자도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될 우려도 없지 않다. 이들의 용기를 높이 사고 사회적으로 보호해줄 수 있는 여건이 확립되기를 기원한다.

내부고발은 ‘블라인드 뒤의 할머니를 조심하라’는 영국속담에 그 뜻이 숨어 있다. 창밖을 보는 시간이 많은 할머니들이 공공질서를 해치는 행위를 신고하니까 할머니의 시선을 의식해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문재인정부도 100대 국정과제로 공익신고자 보호강화와 공익신고 범위확대, 신고자 보호전담조직 강화,공익신고자 필요적 책임감면제 추진이 포함돼 있다. 내부고발이 개인의 용기가 아닌 공동체의 의무로 전환되어 투명사회를 앞당기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김주언(논설주간ㆍ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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