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 칼럼> 가짜뉴스는 한반도 평화를 해치는 바이러스

<김주언 칼럼> 가짜뉴스는 한반도 평화를 해치는 바이러스

  • 기자명 김주언 논설주간
  • 입력 2018.10.11 06:51
  • 수정 2018.10.1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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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일 오후 청와대 관저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측이 선물한 풍산개 한 쌍 중 수컷인 '송강'이를 어루만지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일 오후 청와대 관저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측이 선물한 풍산개 한 쌍 중 수컷인 '송강'이를 어루만지고 있다. 청와대 제공

10여 년 만에 찾아온 한반도 평화분위기에 딴죽을 거는 가짜뉴스가 활개를 친다. 얼토당토않은 황당한 얘기들이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사실 확인도 안 된 유언비어들이다. ‘문재인 치매설’이나 ‘국민연금 200조원 북한 지원설’ 등 밑도 끝도 없는 허무맹랑한 얘기들이다. 가짜뉴스의 진앙은 극우 기독교단체나 극우성향 인터넷매체, 김진태 김문수 등 일부 자유한국당 정치인들, 태극기집회 등이다. 이들에게서 나온 일방적 허위주장이 SNS를 타고 일상에 파고든다. 이를 일부 주류언론이 확대 증폭시키기도 한다.

과거 독재정권이나 이명박과 박근혜 보수정권 당시 가짜뉴스의 생산주체는 국가였다. 이들은 정권의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걸핏하면 간첩을 조작해 발표했다. 민주인사들에게는 ‘용공’ 혐의를 뒤집어 씌워 탄압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은 사회주의 혁명 전위대로 매도했다. 근거 없는 보도지침도 남발했다. 신문과 방송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북한을 악마화 하는 가짜뉴스를 앞장서 보도했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은 ‘성을 혁명도구화 하는 운동권 학생’의 일탈행위가 되었다. 5.18광주항쟁에 북한간첩이 개입했다는 가짜뉴스는 아직도 유포된다.

언론들은 미확인 보도로 국민을 현혹시키기도 했다. ‘현송월 총살설’은 아직도 삭제되지 않은 채 인터넷에 남아 있다. 심지어 국정원이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발표해 가짜뉴스의 진원지로 지목받았다. 국정원은 2015년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 현안보고에서 인민군 서열 2위인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처형당했다고 밝혔다. 언론은 현 부장이 수백 명이 보는 가운데 고사총으로 처형당했다고 보도했다. 군 일꾼 대회에서 조는 모습을 보여 ‘불경죄’로 처벌됐다는 분석도 뒤따랐다. 언론보도 다음날 현부장은 조선중앙TV에 모습을 드러냈다.

남북 평화무드가 조성되면서 가짜뉴스는 일부 극우세력의 전유물이 되었다. 단체 카톡방과 유튜브를 통해 차고 넘친다. 이를 전파하는 몇몇 극우채널의 조회 수는 100만회를 넘어섰다. 구독자수도 수만 명에 이른다. 월 수천만 원의 광고수익에 별도의 후원도 받고 있다. 더구나 일부 인터넷언론이나 종편을 통해 의혹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재생산된다. 가짜뉴스는 한반도 평화를 해치는 바이러스이다. 바이러스는 감염여부를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다. 갈 곳 잃은 극우세력이 만들어내는 씁쓸한 풍속도이다.

가짜뉴스는 그럴듯하게 포장돼 연탄가스처럼 스며든다. 평창올림픽 때는 “북한이 땅굴을 팠다”는 황당한 가짜뉴스가 사실처럼 유포됐다. 남북정상의 평양공동선언 이후에는 더욱 다양하고 극렬해졌다. “문재인이 치매라더라”는 유언비어는 “문 대통령이 건강이상징후를 보였다”는 주장과 함께 확대 재생산됐다. 문 대통령의 치매설은 지난해 6월 법원이 허위사실로 판결해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럼에도 “고사총에 죽을 뻔하다 살아난 문재인” 등 악의적 자막을 올려놓은 영상으로 둔갑해 수십만의 조회를 기록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NLL을 팔아먹었다”는 괴담도 널리 퍼졌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기준으로 북쪽 구역보다 더 많은 부분을 서해 적대행위중지 구역으로 설정해 남한이 양보해놓고 거짓 브리핑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는 남한과 북한의 차이가 거의 없다. 더구나 북한이 남한과의 합의를 통해 NLL을 인정한 성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됐고 자유한국당이 증폭시켰다. 평양에 도착한 대통령 전용기에 태극기가 사라졌다는 허위주장도 나왔다. 기체에는 커다란 태극기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낭설은 북한이 남한 정부에 국민연금 200조원을 내놓으라고 했다는 의혹이다. 한 극우매체는 “일부 SNS에서는 남북 고위급 접촉시 북 참석자가 통일부장관 조명균에게 국민연금에서 200조원을 내놓으라고 했다는 의혹이 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민연금은 대부분 채권과 주식에 투자돼 있어 200조원을 현금으로 바꿔 북한에 지불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터무니없는 의혹을 제기한 태극기집회 유튜브 영상의 조회 수는 8만회를 넘었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의 ‘유엔사 해체 시작’ 주장은 유튜브를 중심으로 “문 대통령이 안보를 포기했다”고 확대 재생산됐다. 유엔사는 1950년 안보리 결의 84호로 결성돼 이를 해체하려면 이를 무효로 하는 결의가 있어야 한다. 이밖에 1, 2차 남북정상회담과 6·12북미정상회담 등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의 벤츠를 문재인이 선물로 주었다”는 가짜뉴스부터 세월호 방명록을 “남한 사람 때문에 태워지는 인공기가 단 한 개도 없어야”라는 조악한 문구로 바꿔 문 대통령에게 종북 프레임을 씌우기도 했다.

허무맹랑한 가짜뉴스는 맹목적 반공주의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파고든다. 남북 분단이후 70년 동안 지속된 반공교육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과거 독재정권과 친일 기득권 세력은 반공을 내세워 권력을 유지해왔다. 박정희 정권은 국시(國是)를 반공으로 내걸고 이른바 ‘용공 척결’을 명분으로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국민을 탄압했다. 전두환과 이명박, 박근혜는 박정희의 후예들이다. 그동안 많은 국민이 조작된 간첩이나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유명을 달리하거나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서글픈 인권탄압 역사가 재현되고 있는 것인가.

문재인 정부는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섰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유튜브, SNS 등 온라인에서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가짜뉴스가 급속히 번지고 있다”며 “가짜뉴스는 표현의 자유 뒤에 숨은 사회의 공적”이라고 지목했다. 이 총리는 “더는 묵과할 수 없다”며 “검찰과 경찰은 유관기관과 공동대응체계를 구축해 신속히 수사하고, 불법은 엄정히 처벌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국민은 정부가 나서기 전에 스스로 가짜뉴스를 판별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럴듯한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않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김주언(논설주간·전 한국기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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