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끝난 등대에서 갈매기 섬을 바라보며

길이 끝난 등대에서 갈매기 섬을 바라보며

  • 기자명 박상건 기자
  • 입력 2018.10.02 09:03
  • 수정 2019.04.29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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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건시인의 섬과 등대여행 ⑦ 거제도, 홍도

[데일리스포츠한국 박상건 기자]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인 해양 국가이자 반도 국가이다. 이 섬들에는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과 어부들의 안전을 위해 유인등대 35개를 비롯하여 5,289개 등대가 있다. 역사와 문화가 숨 쉬는 섬과 사람을 이어주는 등대 불빛. 그 소통의 미학을 찾아 우리나라 해양 공간 곳곳을 30년 동안 답사한 섬 전문가 ‘박상건 시인의 섬과 등대여행’을 독점 연재한다. 그가 직접 취재하고 촬영한 생생한 섬과 바다 그리고 등대이야기가 매주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편집자 주)

외도와 내도(사진=섬문화연구소)
외도와 내도(사진=섬문화연구소)

거제도는 오래도록 왜구의 침략에 시달렸다. 거제도는 한산대첩, 칠천량해전 격전지였다. 한국 전쟁 때는 포로수용소가 있었다. 국경의 섬이자 군사요충지였다.

이 섬 기슭에 서이말등대가 있다.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리 산 65번지다. 횟집이 즐비한 지세포에서 와현해수욕장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서 왼편으로 들어서면 한국석유공사 숲길이 있다. 이 산에는 국내 석유소비량의 23일분에 해당하는 4,750만 배럴의 원유가 비축돼 있다. 경비가 삼엄한 이유다. 이 해안으로 진입하는 바닷가에 등대가 있고 해군기지가 있다.

이 길에서 해안으로 빠져나가는 길은 오랫동안 통행이 제한되었다가 최근에 개방됐다. 이 바닷가를 일컫는 서이말의 어원은 해안선이 ‘쥐’(서)의 ‘귀’(이)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쥐 귀’를 ‘지리’로 부르기도 하고 ‘지리 끝 등대’, ‘길이 끝인 곳의 등대’라고도 불렀다.

서이말등대(사진=섬문화연구소)
서이말등대(사진=섬문화연구소)

서이말등대까지 가는 숲길은 승용차 한 대 정도 갈 수 있을 정도로 좁다. 빽빽이 우거진 숲길에서 등대까지는 4km 거리다. 등대로 가는 숲은 동백나무, 메밀잣밤나무, 굴참나무, 소사나무, 곰솔나무, 생달 나무까지 11개 상록활엽수림의 군락지다. 산길은 걸으면서 스스로 이녁 숨소리를 들을 정도로 적막하다. 등대원들은 이 길을 오가며 고라니, 너구리, 삵, 멧돼지가 지나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단다.

등대 가는 길에서 만나는 공곶이는 봄이면 붉게 타오르는 동백터널이 일품이다. 영화 ‘종려나무 숲’ 촬영지이기도 하는데 수선화가 필 무렵의 풍경이 환상적이다. 맞은 편으로 펼쳐지는 평화로운 상록수림 섬이 안섬(내도)이고, 호수에 떠있는 돛단배처럼 동백과 아열대 식물로 장관을 이룬 섬이 외도이다. ‘겨울연가’ 마지막 회분 촬영지였다. 거제시는 서이말등대가 주변 섬과 바다 풍경을 감상하는 전망대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이 일대를 둘레길로 개발할 계획이다.

바람의 언덕(사진=-섬문화연구소)
바람의 언덕(사진=-섬문화연구소)

이밖에도 등대주변 가볼만한 여행지로는 흑진주 같은 몽돌로 이뤄진 학동몽돌해변이 있다. 해안가에 야생 동백군락지가 병풍을 친 천연기념물해변이다. 다시 해금강 가는 길목에서 내려서면 ‘바람의 언덕’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언덕을 더 올라서면 신선이 되어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신선대가 있다. 그리고 천혜의 동백섬인 지심도가 장승포 앞에서 출렁인다. 지심도 이름을 풀이하면 ‘다만 마음을 다할 뿐’이라는 뜻이다. 여백이 있는 섬, 때 묻지 않은 원시의 섬이다.

이렇게 앞 바다에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놓고 있는 등대 아래 해안은 천연해식동굴과 기암괴석으로 절경을 자랑한다. 서이말등대는 1944년 1월 5일 불을 밝혔다가 해방 직전 미공군기 폭격으로 파괴돼 1960년 5월에 복구했다. 해발 228.4m 고지에 자리 잡은 등대의 높이는 10.2m, 20초마다 1번씩 37km 해역까지 불빛을 비춘다. 이 불빛이 미치는 곳은 부산 영도 앞 주전자섬에서 통영 홍도등대 주변 12해리와 공해상까지다. 부산과 통영, 삼천포, 여수, 거문도 등 남해안과 제주로 나아가는 모든 선박이 이 불빛에 의지해 항해한다.

서이말등대에는 3명의 등대원이 근무한다. 소매물도등대와 근무지를 순환한다. 등대에서는 시간 단위로 기상청에 바다날씨를 체크해 알려주는데, 특히 이곳 등대의 일기예보는 외도 유람선 출항 여부를 결정짓고 관광 수익과도 직결된 탓에 매우 예민하고 중요한 문제이다.

홍도 등대(사진=섬문화연구소)
홍도 등대(사진=섬문화연구소)

이곳 등대에서는 홍도등대를 원격 제어하는 감시시스템도 운용한다. 우리나라 섬 중에서 ‘홍도’라는 이름을 가진 섬은 경상도 통영의 홍도와 전라도 흑산도 홍도가 있다. 전자는 갈매기 ‘홍’자를 사용하는 무인도이고, 후자는 붉을 ‘홍’자를 쓰는 유인도이다.

홍도는 러일전쟁 때부터 일본에게 아주 중요한 전략지역이었다. 그래서 일본해군은 홍대등대를 설치했다. 전라남도 칠발도 등대와 이곳 홍도등대는 등대원들에게는 최악의 근무여건이라서 갑지(1등급)등대로 불렸다. 그만큼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홍도는 문화유산으로서 가치와 함께 섬 경관이 매우 우수하고 희귀식물과 멸종위기 매와 괭이갈매기 집단번식지로써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섬이다.

신선대(사진=섬문화연구소)
신선대(사진=섬문화연구소)

1996년 세 명의 등대원이 철수하면서 무인등대가 되었다. 서이말등대에서 무인도와 주변을 항해하는 선박의 안전을 원격 조정한다. 서이말등대 사무실에서 외로운 홍도등대에 부착된 카메라를 통해 등대 주변과 선착장까지 이상 유무를 실시간 화면으로 모니터하고 있었다. 카메라가 360도 회전하는 것이 아니어서 홍도 전체를 둘러볼 수는 없었다. 아쉬웠다. 이 아름다운 섬을 무인도로 홀로 남겨두다니. 가슴이 아렸다.

일본은 시도 때도 없이 독도타령을 하는데. 중국은 동북공정에 이어도타령을 하는데. 진정, 독도가 우리 땅이고 우리는 자랑스러운 해양민족의 후예라면, 우리가 섬을 더욱 사랑하는 길이 무엇이고 섬의 가치와 중요성을 깨닫고 배우는 일이 무엇인지를 더 깊고 넓은 바다처럼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게 ‘길이 끝인 곳의 등대’는 서이말의 한 가족이 된 갈매기 섬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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