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부터 시작된 2019년 국정감사가 20일 종료를 코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이번 국감도 국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것 같다. 겉으로는 한결같이 ‘정책감사’를 외쳤지만 자유한국당은 ‘조국감사’를 목표로, 여당도 내심 ‘방어감사’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구태로 갈 가능성이 예상되었다. 14일 조국 장관이 사퇴하면서 바꿔지긴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국민의 눈으로 보기에도 너무 우습고 수준 낮은 장면들이 노출됐다.국회 문체위는 국정감사가 시작되자마자 한국당의 집단 퇴장으로 파행됐다. 이유가 선뜻 이해되지 않았
가을이다. 가을이어서 시를 읽는다. 시를 읽어야 가을이고, 가을이므로 시를 읽기로 한다. 시를 읽어서 가을이 되리라. 최소한 시인들에겐 가을이, 가을이 오는 일이 그리 되어야 하리라. 가을과 시여. 가을만이라도 그래야 하고 이 가을만이라도 어쩌면 그래 주어야 하리라.지난여름은 우리에게 아무 일도 주어지지 아니하였습니다. 차라리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에겐 단 한 줌의 아름다움도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거기 단 한 편의 시도 쓰여지지 아니하고 말았습니다. 세간의 지붕들마다에는 창날 같은 서릿발이 올라서 염천의 볕에도
좀 지난 일이지만 지난 3월 21일 전국 곳곳에서 이주 외국인과 외국인 근로자들이 ‘세계인종차별철폐의 날’을 맞아 한국사회에 만연한 인종차별을 개선하고 동등한 처우를 해 달라는 집회가 열렸다.외국인 근로자들이 기장 많이 지적하는 문제점은 사업장을 자유롭게 옮길 수 없다는 것과 숙식비를 급여에서 강제로 징수하는 일, 그리고 최저 임금마저도 깎는 악덕 사업주가 많고 여성 노동자에 대한 폭력도 심각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심각한 줄 몰랐다고 하기에는 너무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한국인 근로자들이 건설현장에서의 미등록
목포라는 말/ 목포라는 말// 그 나무나루 말과 순정이라는 말과/ 그 나무나루라는 말과 눈물이라는 말과/ 그 나무나루라는 말과 어스름이라는 말과// 목포라는 말/ 나무나루라는 그 이름과, 세상에 와 존재하는/ 그립고 서럽고 누추한 것들의 호명과/ 그것들을 가리키는 이름을 살짝 한번 바꾸어/ 불러보고 싶어지는// 그 나무나루라는 단어 곁에 가을날이라고/ 그 나무나루라는 단어 곁에 조막손이라고/ 그 나무나루라는 단어 곁에 민들레라고// 목포라는 말/ 왠지 그렇게 나무나루라는 모국어의 글썽임 곁에/ 그것들의 내면, 그것들의 깊은 혼백의
어제는 2020학년도 수능 9월 모의평가가 있는 날이었다. 수험생은 약 55만명. 작년보다 5만1천여 명 줄었다. 출산율이 줄어 재학생은 5만5000여 명 감소한 데 비해 졸업생 등은 9만여 명으로 되레 3천600여 명 늘었다.3천600여 명에는 검정고시 출신자와 만학도가 포함됐지만 N수생이 늘었다는 것을 뜻한다. 치열한 내신경쟁 속에서 1~2등급을 받기 어려우니 고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도 더러 있다. 내신 따러 고등학교에 가는 게 아닌데 내신경쟁을 피해 교문을 나서는 것이
지난해 12월 17일, UN 73차 총회에서 ‘유엔농민권리선언’이 채택됐다. 이 선언문에서 ‘국가는 모든 농민, 농촌노동자의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하며 충족시켜야 한다. 선언문 권리들의 완전한 실현을 성취하기 위해 입법, 행정 및 기타 적절한 조치를 신속히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홀대해왔던 농업, 농촌, 농민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라는 요구였다.농촌은 ‘자연의 관리자’ ‘환경 지킴이’ 공익적 기능 커공업지역과 도시공간이 공산품과 서비스를 제공하여 안락함과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다면, 농촌은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경작기능
이것은 부사에 관한 이야기다. 그러나 사과의 품명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며, 물론 나주목사 함경부사와 같은 벼슬아치의 권위를 수식하는 용어에 대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 잠시 잠깐이나마 문장의 품사에서의 부사(副詞)어를 환기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한다. 더 멀게는 돕는다는, 조력한다는 풍성하거나 여유를 갖게 한다는 의미들의 순간에게로 눈길을 돌려 보기로 한다. 사물에는 제각각의 이름들이 있다. 그것들은 불려지기 위해 있기도 하고 존재하기 위하여 혹은 존재만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를 명사라고 칭한다. 명사를 대신하는, 그와 그대와 너라
일본의 아베 정권이 한국에 대해 소재수출을 통제하면서 촉발된 경제도발이 두 달을 맞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며 각오를 내보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꼭 109년 전인 8월 22일은 대한제국이 막을 내린 날이다.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을 강점한 날은 공식적으로 8월 29일이었지만 황제 순종이 ‘날인했다’고 한 날은 바로 이날이었다. 국가를 내준 명분도 어이없지만 고위관료들의 무책임, 심각한 국론분열 등 국가 전체가 얼마나 무기력했던가를 살펴보는 것도 오늘날 교훈으로 삼기에 충분할 것이다.1910년 8월 2
74주년 광복절인 지난 15일 충남 금산군 남일초교 운동장엔 1000여 개의 태극기가 펄럭였다. 제58회 남일면민 화합체육대회가 열린 것이다.광복을 기념하며 매년 열리는 체육대회는 내외빈과 주민 20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올해도 어김없이 성황을 이뤘다. 특히 일본의 수출제한과 역사왜곡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높은 때라 의미를 더했다.한때 1000여 명이던 남일초교 전교생이 60명으로 줄었지만 이날 만큼은 학교가 종일 북적거렸다.축구, 족구, 게이트볼, 투호, 한궁, 윷놀이, 훌라후프 등 7개 종목에 출전한 면민들은 마을의 명예를
일본의 국제적인 예술제인 ‘아이치트리엔날레 2019’가 개막 사흘만인 3일 특별기획전 ‘표현의 부자유, 그 후’ 라는 주제의 전시 전체를 중단했다. 평화의 소녀상 때문이다. 한일간의 정치적 갈등 속에서도 이런 전시회를 가지게 되어 ‘일본 예술계가 정치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구나’ 하고 긍정적으로 보았었는데 단 사흘만 문을 닫아버려 ‘그러면 그렇지’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표현의 부자유’ 드러낸 일본의 ‘표현의 부자유, 그 후’展‘표현의 부자유 그 후’ 특별기획전은 외압으로 눈앞에서 사라져가는 표현들을 모아 현대 일본의 표현 부자
“저무는 하루가 붉은 얼굴로 내려다보며 있고는 하였다. 한번 생각났던 일들은 잊혀 질 때까지 잊어야만 한다는, 사실이 번번이 늦게 도착하고는 하였다. 그럴 줄 몰랐다고 하는 말을 들어야 할 때가 제일 슬펐다.지상의 것이 아닌 표정들로 장미꽃들은 피어났다.장미꽃이 생각났던 시간이 지나가지 않고 있었으므로 살얼음이 낀 강을 건너야 너에게로 닿을 수 있는 길이 남아 있었다.여기는, 장미에 관한 영화(榮華)를 찍고 간 자리라고 하였다. 내 시에서는 가급적 한 송이의 장미도 남아 있지 않았으면 싶었다”위에 새겨진 인용문구는 필자의 최근 시집
최근 들어 전국의 광역 및 기초의회가 국회의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정부는 지난 1월 31일 정부 입법안 제출계획을 발표한데 이어 3월 26일 제 12회 국무회의에서 이를 의결하고 29일 국회에 제출하였다. 이 법안은 4월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회부되었다. 이와는 별도로 4월 24일 오전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대통령령인 「지방자치단체의 행정기구와 정원기준 등에 관한 규정」일부개정령(안)이 통과됐다. 6월 27일에는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특례시법’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에 상정됐다. 법안이
아파트 10층 높이에서 새처럼 점프를 한다.2~5바퀴를 회전하며 구름을 통과하고 숲과 빌딩을 지나 마침내 수조 속으로 다리부터 입수한다. 하이다이빙이다.27m(남자부), 20m(여자부) 높이의 플랫폼에 선 하이다이빙 선수들은 수조를 바라보며 검지와 엄지를 동그랗게 모은다. “연기할 준비가 됐다”는 의미다.연기가 끝나면 선수들은 코칭스태프를 향해 다시 한번 ‘O’를 그린다. 그제야 코칭스태프와 관계자들은 안심한다.지난 22일 광주광역시 동구 조선대 하이다이빙 경기장에서 열린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하이다이빙 경기의 화두는 ‘안
발해에서 온 비보 같았다/ 내가 아는 발해는 두 나라의 해안을 기억에 간직하고/ 있었던 미쁘장한 한 여자였다/ 마을에서는 유일하게 자전거를 다루어 들을 달리던/ 선친의 어부인이기도 하였다/ 학교 가는 길에 들렀다던 일본 상점의 이름들을/ 사관처럼 늦게까지 외고 있었다/ 친목계의 회계를 도맡곤 하였으나/ 사 공주와 육 왕자를 한 몸으로 치러 냈으나/ 재위 기간 태평성대라곤 비치지 않았던/ 비련의 왕비이기도 하였다막내 여동생을 태우고 발해로 가는 저녁은/ 사방이 아직 어두워 있었다/ 산협들을 연거푸 벗어나자/ 곤궁했던 시절의 헐한 수라
걱정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지난 1일 일본이 반도체 소재 등 3개 품목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로 한일 간에 갈등이 증폭된 일이 있었지만 경제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경제적 피해를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점증하는 수출·수입 규제 … ‘경제전쟁’ 우려여기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고성능 소재들의 한국 수출 규제는 물론, 한국의 농수산물 수입도 규제하는 등 범위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는 예측도 있어 ‘경제 전쟁’ 수준으로 번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바이칼 호수에서 한 사나이를 만났다/ 2002년 민족 시원을 찾아가는 녹색영성 순례의 길, 몽골에서 봉고차를 타고 맨 처음 러시아 국경 수비대를 열었다 저무는 바이칼에서 기타를 맨 70대 중반의 노신사를 만났는데, 자작나무 껍질 같은 머리카락을 긴 손가락으로 빗어 넘기며 샹송을 불렀다 처음엔 길거리 가수려니 외면하다 러시아 민요 백학을 듣는 순간 찌르르 바이칼 호수의 물고기 오물을 다 토할 뻔했다// 집 나온지 35년 넘었다는 프랑스 국적의 떠돌이 가수, 알흔 섬의 물빛 같은 눈빛으로 당당하게 내 노래 더 듣고 싶으면 1달러씩 내
1592년 4월 14일 부산진에 상륙한 왜군 주력인 고니시부대는 부산진과 동래를 점령하여 교두보를 확보한 뒤 커다란 저항을 받지 않은 채 파죽지세로 북진하여 5월 3일 한양을 점령하였다. 조선땅에서 임진왜란을 일으킨지 단 20일만이었다. 그들은 살인과 방화, 약탈로 우리나라를 유린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고 있던 경상도의 성주사고(史庫)는 물론 충청도 충주사고, 한양의 춘추관도 불태웠다. 이제 남은 것은 전주사고뿐이었다. 더구나 여기에는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등 모두 1322권이 남아있었다. 바로 옆 경기전
비가 오는 날이었다. 모처럼 서점엘 갔다. 김훈의 근간 한 권을 손에 들고 그 도시를 빠져나와 시골로 돌아왔다. 서점에 간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김훈의 수상집과 함께 오게 되었다. 그새 피사의 사탑들처럼 늘어난 시멘트 기둥(고층 아파트)들이 자꾸만 하늘을 가려 보이고 있었다. 흐리고 탁한 하늘이었다. 인구는 줄어 가는데 늘어만 가는 집들이 궁금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도로를 내고 집을 늘려가는 지금의 방식들이 궁금했다. 누가 저 집에 들어서 살고 누가 저 새로 난 길을 따라 달리려는지, 이 땅 위에서의 앞으로의 일들이 빗물에 섞여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우리 관광객들이 뜻밖의 참변을 당한 가운데 기쁜 소식도 연이어 들려온 열흘간이었다. U20 축구대표팀이 사상 최초로 결승에 진출했고, 이정은6은 유에스오픈여자골프챔피언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봉준호 감독이 칸 영화제에서 ‘기생충’이라는 영화로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아이돌스타 BTS는 미국과 영국의 대형 무대에서 대박 공연을 펼쳤다. 외신들은 비틀즈나 마이크 잭슨보다 더 뛰어난 21세기 스타로 평가했다. 영국 토트넘의 손흥민도 비록 팀은 패배했지만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 유감없이 기량을 발휘해 유럽인들의 뇌리에
그가 나의 손을 놓고 가버렸을 때 저녁이 왔고 걸어서 길에 도착할 시각에 초승달이 졌다/ 어둠이 내리고 고요가 쌓여가는 동안 능선 아래의 칠흑과 능선 위의 푸르스름함을 보았다/ 오래 서서 ‘저 능선 굴곡 따라 난 걸어왔어’라고 외쳐본들 역시 혼자다/ 밤새 안개는 뒤척이고 숲은 축축하고 나무는 잎을 키우며 허리가 휘었지만 별들은 제 길을 무사히 지나갔다/ 만날 수 없거나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미련과 호기심과 서운함을 달랠 사이도 없이 새벽이 왔다/ 아침 동산을 보면 태양보다 숨은 초승달이 먼저 눈에 그려진다.박노식의 시(초승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