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제와 규제, 인습과 관습, 법률과 도덕률, 타성과 습성….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 살 수는 없을까. 루소는 자유롭게 태어난 인간이 도처에서 압제와 사슬에 묶여있다고 주장했다. 루소가 말한 압제는 정치적인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하지만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정치적인 압제가 전부는 아니었다. 오히려 인습이나 전통에 의해 더욱 심한 규제를 당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선천적으로 자유롭게 태어난 인간이 후천적으로 규제에 묶인다는 것은 인간의 자기모순이다. 반인간의 올가미에 묶인 것이다. 그러나 압제와 인습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의 고유사상인 풍류(風流)는 신라말에 불교와 유교가 들어와 토착화되면서 점차 퇴화하여 고려의 국교가 된 불교와 조선조의 역시 국교처럼 굳어진 주자학체제, 이어서 일제 식민지배와 해방 후 전쟁과 냉전을 거치는 과정에서 거의 소멸되다시피하였다.남한의 자본주의체제나 북한의 공산주의체제는 풍류사상과 풍류인물이 ‘등장’하기에는 대단히 척박한 풍토가 되었다. 특히 19세기말 이래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정신보다는 물질, 인격보다는 능력이 우선시되고, 예스러운 것이나 심미적 취향보다 실용성과 획일성이 강조되면서 우리 전통적인 풍류사상과
2022년 임인년(壬寅年) 새해 들어서도 대한민국에서의 부동산 전쟁은 그치지 않을 것 같다. 언론은 올해 부동산이 “오르겠다”와 “내릴 것 같다”는 해설을 함께 실어 국민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고, 선거에 나선 정치인들은 입만 벌리면 젊은이들에게 “걱정마라, 모두 해결해주마”라고 침을 튀기고 있지만 한두 번 속은 게 아니라 믿는 사람이 많지 않은 듯하다. 부동산을 바라보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국민들의 시각도 크게 다르다.빚내서 집 마련 … 안정적으로 출산 계획 세워30대 초반 3년차 맞벌이 부부 A씨와 B씨는 최근 경기도에
꼭 90년 전인 1932년 1월 8일이다. 한인애국단원 이봉창(李奉昌) 의사는 이날 오전 11시 44분경, 일왕 히로히토가 만주국 괴뢰황제 부의(溥儀)와 도쿄 요요기(代代木) 연병장에서 관병식을 거행하고 경시청 앞을 지날 때 수류탄을 던졌다. 이봉창은 일왕이 두 번째 마차에 탔을 것으로 짐작하고 폭탄을 던졌으나 일왕은 폭사하지 않았다. 수류탄의 성능이 별로 좋지 않았던 것이다.국치 22년 만에 대한제국 병탄의 수괴인 일왕을 적의 수도 왕궁 근처에서 폭살하고자 한 대담한 의거는 비록 실패하기는 했으나 한민족으로서는 대단한 쾌거가 아닐
1910년 12월 30일 한밤중에 꽁꽁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는 무리가 있었다. 남자들은 무거운 짐을 지게에 지고 여자들은 머리에 인 그야말로 남부여대의 행렬이었다.일본군 국방수비대의 검사가 있었지만 워낙 추운 날씨이고 초라한 행렬이라 그대로 보냈다. 당시 빚을 진 조선 농민들의 야반도주로 보았던 것 같다. 일제가 두고두고 개탄했던 삼한갑족 우당 이회영 일가의 망명길이다흔히 지식인의 유약성이 논의되지만, 우당은 조선 선비의 신분으로서 해외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창설하고 이후 줄곧 신채호ㆍ박용만 등 무장투쟁론자들과 함께하였다. 죽
내년 정치 일정을 보면 대선이 2022년 3월 9일이고, 지방선거가 6월 1일이다. 두 정치행사를 별개로만 취급할 수 없다. 그런데 대선 후보들의 입에서는 구체적인 지방공약이 나오지 않고 있다. 국가적 당면 과제로는 코로나19 방역대책, 미중(美中) 갈등 속에서 한국의 생존전략 등을 들 수 있다.‘국토 반토막’ 눈 앞에 둔 지방의 소멸 위기그러나 지방의 문제는 국가가 반쪽날만큼 더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지역격차로부터 비롯된 지방 시·군의 소멸 위험, 재정분권, 진정한 지방민주화를 위한 선거구의 합리적 개편, 최근 활발히 논의되고
높은 자리는 그 위치에 걸맞는 책임과 도덕성 그리고 정의의 실현이 요구된다. 절대군주 시대에도 가뭄이 들면 임금이 하늘에 부덕함을 빌면서 기우제를 지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위정자와 특권층은 권력만 행사했지 책임감과 도덕성ㆍ정의구현을 외면했다. 결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조선시대 선조는 왜군이 쳐들어오자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쳤다. 이를 지켜본 백성들이 몰려가 임금의 거처 경복궁을 불질렀다. 한양으로 돌아와서는 왜적과 싸운 장수들은 제쳐두고 자신의 측근들에게 관직과 훈작을 나눠주었다. 뒤를 이은 인조는 병자호란이 일어나
1980년 ‘서울의 봄’은 화창하게 열렸다. 온 국민의 기대를 모으며 독재의 긴 터널을 지나 서울의 찬란한 봄이 개막된 것이다. 60년대의 봄이 4월혁명으로 희망차게 열렸고, 70년대의 봄 역시 민주회복을 다지면서 밝게 개막되었듯이, 80년대의 봄은 그야말로 민주화의 소망을 안고 찬란하게 열렸다.설마 60년대의 봄을 짓밟은 5ㆍ16쿠데타나 70년대의 봄을 앗아간 유신정변과 같은 폭거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국민은 80년대의 새 봄을 맞았다. 그러나 다시금 춥고 어두운 반동의 역사가 예비되고 있었다. ‘계엄정국’의
지난 11월 우리나라 월 수출액이 600억 달러를 돌파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604억 4000만달러, 우리 돈으로 71조 2900억원에 이른다. 영국을 앞질러 세계 8위가 되었다. 주요 품목별로 보면 반도체가 120억 4000만 달러(1년 전 대비 40.1% 증가)로 가장 많았고, 석유화학 48억 4000만 달러(63% 증가), 자동차 41억 2000만 달러(3.3% 증가) 순이었다.이 가운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분야는 농수산식품 수출의 급격한 증가이다. 11월 한 달간 9억 9000만 달러였고, 1년 수출액도 사상 처음으로 10
불평등한 강화도조약(1876년) 이래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을 빼앗긴 채 야만적인 식민통치에 시달리던 한민족이 비록 국외의 임시정부이지만 강도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 지 80주년이 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 10일 김구 주석과 조소앙 외교부장의 명으로 조소앙이 기초한 ‘대일선전성명서’(선전포고)를 공포하고, 일본정부는 물론 미ㆍ영ㆍ중ㆍ소 등 4개국에 발송하였다. 일제가 진주만을 기습공격한 지 (12월 8일) 이틀 만이다.김구 주석과 조소앙 외교부장은 헌법(대한민국 임시약헌) 절차에 따라 일제에 선전을 포고하였다. 당
1970년대는 사회적으로나 남북문제에 있어서 대단히 복합적이고 복잡다난한 시대였다. 먼저 정치적으로는 유신독재로 시작하여 긴급조치 시대를 거쳐 궁정동의 10ㆍ26사태로 막을 내린다. 경제적으로는 고도산업화 단계로 엄청난 국부를 이루면서 남여간ㆍ지역간ㆍ산업간의 심각한 격차를 이루어 갈등을 조성하고 사회적으로는 이로 인한 본격적인 도시화와 농촌황폐, 향락ㆍ범죄현상이 증폭한다.70년대 초두를 장식한 사건은 김지하 시인의 ‘오적’ 사건이다. 김씨는 당시 사회의 타락한 지도층을 오적으로 형상화하여 신랄히 풍자했는데, 이것이 반공법 위반혐의를
대장동과 고발 사주 의혹에다 불안한 부동산 시세, 코로나 감염증 확산 등 짜증나는 뉴스들이 뒤덮고 있는 가운데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와 국민을 기쁘게 했다. 동갑내기 젊은 장교 부부(대위)가 다섯 쌍둥이를 출산했다는 소식이다. 이들 장교 부부는 근무하는 부대가 달라 주말부부로 지내왔다. 결혼한지 2년 반이 지나도록 임신이 되지 않자 인공수정을 택했다가 뜻밖에 딸 넷과 아들 하나를 한꺼번에 얻게 됐다는 것이다. 아이를 갖는 것조차 주저하는 요즘 풍조에 처음부터 쌍둥이를 원하다가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하니 얼마나 대견한지 모르겠
‘잘났어, 정말!’ 이란 말이 유치원생에서 성인에 이르기까지 유행된 적이 있었다. ‘잘났어, 정말’은 냉소와 야유로 가득 찬 경멸의 언사다. 정말로 잘났다는 긍정이 아니라 네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느냐는 조롱이다. 이 유행어는 오랜 독재와 억압에서 벗어난 국민들의 탈권위주의를 반영하는 한편, 위선에 대한 통쾌한 야유가 깃들어 있다. 아울러 일체의 가치와 권위를 부정하는 언어공해의 요소 또한 적지 않았다.“내가 이럴려고 대통령이 됐나”, “염병하네” 등이 박근혜 탄핵정국에서 히트를 쳤다. 유행어는 그 시대 그 사회의 생태를 가장 날카
무등서예연구원 원묵회가 주최하고 광주광역시가 후원하는 제39회 원묵회서예전이 오는 24일까지 광주 광천동에 위치한 유스퀘어 문화관 금호갤러리에서 열린다. 무등서예연구원은 일속 오명섭 선생이 제자 양성을 위해 1980년에 설립한 단체로 호남지역의 서예 문맥을 잇고 있다. 1982년 첫 전시회를 개최한 이후 매년 전시회를 열어 올해로 39회째를 맞았다.이번 전시회에는 1년간 실력을 갈고 닦은 회원 70명의 작품이 선보인다.무등 서예연구원 오명섭 회장은 “팬데믹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회원들의 예술혼과 문화적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 맺어진 날이다.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일제에 강탈된 것으로 알려지지만 사실상 국권을 빼앗긴 것이다. 이로써 서울에 일본통감부가 설치되고, 전국적으로 일제 경찰이 배치되어 치안이 그들 손아귀에 넘어갔다. 또한 이른바 고문정치라 하여 각 부처에 일본인과 친일외국인을 고문으로 임명하여 인사ㆍ재정 등 주요 내정이 그들에게 장악되고 사실상 조정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을사늑약이 강제된 날은 하늘도 슬퍼했던지 궂은 비가 내리고 서리치는 날씨이기도 해서 이같은 날을 을씨년스럽다고 일컫게 된 사연이다.1905년
지난 11월 3일은 92주년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이었다. 이날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 광장에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동지회, 기념사업위원회 등 관련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이 치러졌다. 코로나19 때문에 49명만 참석해 아쉬웠지만 김부겸 총리의 영상메시지가 전달되고 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공연도 선보여 그런대로 모양새를 갖춰 진행됐다. 전국의 여러 헉교에서도 교육청이나 전교조, 또는 학생회 주도로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92주년 기념식, 코로나19로 49명만 참석하여 치러져학생독립운동은 1929년 1
단재 신채호(1880~1936)는 항일언론인, 계몽사상가, 전기작가, 혁명문인, 민족사학자, 아나키스트 등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57년의 생애를 오롯이 조국해방운동에 바친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길지 않은 삶, 그 중에서도 8년 동안의 옥살이를 빼면 50년도 채 안 되는 생애에서 참으로 여러 분야에 걸쳐 많은 일을 했다. 전문가라도 한 분야에서 이루기 어려운 일을 단재는 모두 해냈고, 각 분야의 정상수준이 되었다. 자신의 표현대로 “사필(史筆)이 강하여야 민족이 강하고 사필이 무(武)하여야 민족이 무(武)하다”는 정신이었기
‘20세기의 볼테르’라 불리는 찰스 비어드(1874~1948)는 역사학자로서 사학협회 회장 등을 지낸 미국의 대표급 지성이었다. ‘아메리카 문명발흥’ 등의 책을 썼다.어느날 강의시간에 한 학생으로부터 인생경험에서 배운 모든 것을 5분 안에 요약해 달라는 좀 까탈스러운 질문을 받았다. 비어드는 한참 생각한 후에 5분도 필요 없고 단 네 줄이면 된다면서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첫째, 신은 파멸시키려는 자에게 먼저 권력에 눈이 어둡게 만든다. 둘째, 역사의 물레방아는 천천히 돈다. 그러나 그 방아는 잘게 갈아나간다. 셋째, 벌들은 꽃에
청산리는 만주 화룡현 삼도구에 있는데, 우리 교포들이 많이 사는 용정촌에서 약 100여 리 떨어져 있다. 주위가 산으로 첩첩 둘러싸인 첩산이므로 우리 교포들이 청산리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부근에는 충신장(忠信場)이라는 중국인 마을이 있고, 충신장에서 서쪽으로 30리 되는 곳에 큰 바위가 있다고 하여 대립자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고, 거기서 다시 서쪽으로 15리쯤 가면 백운평이 있다.일제는 1920년 10월 2일 마적의 수령 장강호(長江好)를 매수하여 마적 400여 명으로 하여 훈춘의 일본영사관을 습격케 하였다. 이 습격으로 시부아
국민은 과연 5·18, 전두환, 집단발포, 헬기사격, 신군부 등 1980년에 있었던 광주민중항쟁의 키워드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여기에 대해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그 답을 알려주었다.5·18은 이제 우리 사회의 기둥인 20~30대와 40대 초반 세대들이 직접 경험하지 못했던 역사적인 일이 됐기 때문에 진상을 통한 개념 정리가 대단히 중요하다. 하여 그 실상을 되돌아봄으로써 더 이상의 오해와 왜곡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필요하게 됐다.저급한 역사의식 드러낸 미래 정치지도자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지난 화요일